『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2010) 서극 감독 / 유덕화, 이빙빙, 유가령 주연
서극은 역시 나와 코드가 맞는다. 누군가는 칼쓰고 날아다니는 무협영화를 무척이나 싫어하지만. 난 그런 영화가 무척이나 좋다. 영화가 좀 비현실적이면 어때? 재미있고 즐거우면 되지. 오우삼의 총빠진 느와르는 무척이나 지루했고 돈이 아까웠지만, 서극은 자기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영화로 다시 돌아왔다. 단지 식상한건 이제 왠만한 대작 중국영화에는 다 얼굴을 들이미는 유덕화의 얼굴뿐이라고나 할까.
허술한 플롯과 단순한 스토리라인을 빠른 전개와 화려한 액션신으로 커버를 해왔던 서극이지만, 이번 영화는 나름 스토리라인도 탄탄하다. 전개가 빠른 것은 여전하지만, 이야기 구조가 복층 구조로 되어있어서 스토리 라인이 그렇게 단순명료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거기다가 마치 20세기 소년을 보듯,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씩 발견되는 사실들은 관객들이 계속해서 극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빠른 전개가 오히려 득이 되고 있는 셈인거다.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정리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계속 밀어붙이니까 관객들은 하나라도 놓칠까 싶어서 계속 극에 몰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가 복층이 아니라 단층이었다면, 이 영화는 단지 혈의 누 2탄에 그쳤을 것이다. 단지, 무협이 조금 더 가미된...
한가지 짜증나는 건, 맨 끝의 결말. 측천무후 만만세가, 덩샤오핑 만만세라고 들리는 건 단지 나뿐은 아닐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지 백성들에게 번영과 안정을 주는 것만으로 독재와 반민주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더 이상의 피비린내 나는 혼란을 막기 위해 측천무후 만만세를 외쳤다는, 지극히 김대중 스러운 지지였다고 쉴드를 쳐줄 수는 있겠으나, 유덕화는 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오히려 지하로 버로우를 탄다. 자기가 정권을 잡으면서 더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이전의 잘못을 용서했던 김대중과 자기는 정권을 가지지 않았지만 더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독재자를 지지하는 유덕화의 입장은 여러모로 많이 달라보인다.
근데 요즘은 이런 류의, 중화인민공화국 만만세 라고 부르짖지 않으면 영화를 못만드는 건 아닐까? 영웅에 이어서 줄줄이 등장하는 이런 류의 중국영화에 이젠 조금씩 물릴려고 하는 거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