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2000)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 가이 피어스, 캐리-앤 모스, 조 판토리아노 주연
기억이란 것은 참으로 부정확한 것이다. 항상 지나간 추억은 아름답게 느껴지고, 연락이 끊겨진 친구들과 있었던 에피소드들은 온통 좋은 기억들만 머리속에 남는다. 분명 나쁜 일들, 섭섭한 일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들만 머릿속에 남는 다는 것은 두뇌라는 것이 좋은 기억만 남기고 나쁜 기억은 삭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자기합리화든 아니든 간에 일단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가 죽고 난 다음에 카이사르가 죽은 이유를 비교적 단순하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싶은 현실만 보고 싶어하는데, 카이사르는 사람들에게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도 보여줬다는 것이다. 비록 현실이 그렇고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되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끝까지 보고싶은 현실만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옥타비아누스는 그렇게도 조심스럽게 황제가 되는 방법을, 최대한 황제가 되는 것처럼 느끼지 않게끔 진행했던 거다. 로마 공화정은 로마사람들이 가진 위대한 긍지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주인공인 레너드는 그런 기억의 부정확함이 더 극심한 사람이다. 10분 전에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것은 그가 직접 찍은 사진, 메모들, 그리고 자기 몸에 새겨넣은 문신들이다. 그래서 그는 그런 기록들에 철저히 의지된 삶을 살아가는데, 문제는 그가 그렇게 신뢰하는 기록들조차 조작된 기록일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자기합리화를 통해서 만들어진 기억이 문신등으로 기록되는 과정을 거치고 그 기록이 확실히 사실일거라 생각하지만 애초에 기록의 근원이 되는 기억조차 변형된 것이기에, 과연 남겨진 그 기록을 신뢰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그러니까 궁예를 몰아낸 왕건이 궁예는 지독히도 나쁜 넘이었어라는 자기합뢰화된 기억을 문헌과 같은 기록으로 남겼을때 과연 그 기록이라는 것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인 것이다. 흔히들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얘기하지만, 그 기록들조차도 어차피 사람의 기억을 기본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그런 기록들 마저도 사실 믿을만한 게 안된다는 얘기인 셈이다.
사실 이런 예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어요 라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기억이 결국 이라크전쟁을 만들어낼 정도이니... 이 또한 얼마나 섬뜩한 일인가.
아빠랑 같이 목욕탕에 간 꼬마애가, 아빠가 하는 말 아~ 시원하다라는 말을 듣고 탕속으로 들어간 다음에 물이 엄청 뜨겁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세상에 참 믿을 놈 없구나. 그 말이 어쩌면 이 영화의 결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