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홍미노트10 프로
티다이렉트샵 쿠폰이 생겼는데 사용기한이 있었다. 기한 끝나기 전에 사용해야겠다 싶어서 보니까 LG폰은 없었다. 이제 선택지가 삼성 아니면 애플인거냐... 하며 씁쓸하고 있는데, 샤오미가 있었다. 한 6년전인가 홍미노트2가 판매가가 원가보다 저렴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사봤다가 한 3개월쓰다가 팔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뭐 가격이 워낙 매력적인지라 홍미노트10 프로를 샀다.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쓸만하다. 당장 체감적으로는 다가오는 단점은 전에 쓰던 갤럭시폰 보다 조금 두껍고, 자동으로 통화녹음이 안된다. 통화중에 통화녹음 버튼을 누르면 '통화를 녹음합니다' 라는 멘트가 통화중에 흘러나온다. 인수인계도 제대로 안되어서 두 번 다시 물어보기 힘들 것 같은 곳에서는 사용하면 안되는 폰이다. 또 그런데 가면 갤럭시폰으로 갈아타서 가야지...
폰을 바꾸다 보니, 사진을 많이 찍는다. 사진을 찍으면 조금 무섭게도 샤오미 클라우드로 동기화가 된다. 이미 나의 개인정보는 중국에서 공공재로 퍼진지 오래라, 조금 둔감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섭기는 하다. 더 무서운 것은 5년 전에 3개월 정도 썼을때의 사진과 문자메시지, 통화내역이 아직 샤오미 클라우드에 남아있다는 점이다. 갑자기 문자메시지에 2015년 회사 다닐 때 내용들이 있어서 깜짝 놀라서 보니 지가 알아서 샤오미 클라우드에 동기화해서 데이터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2015년의 후쿠오카 여행사진도 살아나서 반갑기는 했다.
#2. 우울성 장애
요즘 계속해서 우울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요즘 같아선 우울증 걸린 사람이 왜 자살을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떨쳐내볼려고 온갖 행동을 해도 떨쳐지지 않는다. 운동을 3시간씩 해도, 반식욕을 2시간씩 해도, 등산을 해도, 사람을 만나도 괜찮아지는 것은 그때 뿐이고,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극도의 우울감이 확 올라온다.
내가 죽으면 이 우울감이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자살생각을 여러 번 하다가 진짜 이러다 큰 일 나겠다 싶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선생님과 상담받으면서 펑펑 울고 약을 먹으니 조금 살만은 해진 것 같다. 이 마음상태로는 어느 곳에 가든 회사에 손해일 것 같아서 구직활동은 올스탑됐고 그냥 숨만 쉬고 산다.
#3. 가게를 접는다
오랫동안 운영했던 치킨집을 접는다. 아마 6월 안으로 원상복구하고 마무리 할 듯 싶다. 권여사의 몸 상태가 한계가 온게 사실이고, 본사에서는 사람을 더 쓰라고 하지만 사람을 더 쓰는 순간, 사장몫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권여사가 아파서 사람을 더 쓰는데, 어쩔때는 종업원보다 이득이 못 남을 때가 있다.
치킨집을 하면서 터가 하나도 없던 수원에서 아파트를 두 채 샀고, 나는 그 학비 비싼 대학원을 졸업했다. 최근 몇 년간 크게 돈 걱정은 안했던 것 같다. 그 모든 것이 은혜고 감사의 기도제목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 비싼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주말에는 치킨집 배달을 하느라, 여러가지 기록학 쪽 대외활동을 하지 못한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치킨집 때문에 그 제안을 받지 못했던 일이다. 이후 경력제한이 걸려서 지원조차 못한 것은 여러모로 못내 아쉽다.
#4. 10년 전의 나와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
나에게는 '여러가지 일들'이라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적어나가는 글들이 있다. 이 블로그 안에도 카테고리 하나가 그것인데, 오랜만에 옛날에 적은 글들을 보다가 이런 글을 발견했다.
이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 27세의 나와 37세의 나. 달라진게 있다면 체중이 30kg 불었고, 흰 머리가 늘었고, 안경을 벗었고, 현금이 좀 늘었다. 탈모를 걱정하고 있고, 그때의 나는 공무원은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요즘의 나는 공무원도 생각하고 있다.
나의 흔적들을 오롯이 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나에게 물어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다.
(아마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소시민으로서, 절절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남김으로서 살아있는 민중사의 사료를 남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혹시 모르지 않나, 한 200년이 지난 후에 남북한시대를 연구하는 누군가가 내 블로그를 연구주제로 삼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