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믿기 힘든 한 죽음이 있었다. 여러 가지 단편영화 시나리오를 인정받아서 장래가 촉망받던 한 작가의 죽음이 그것이다. 그녀의 사망원인은 아사(餓死). 믿기 어렵겠지만 그녀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굶어서 죽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2층 주인집 문에다가 조그마한 쪽지를 하나 남겼다고 한다.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그 쪽지를 본 주인집 송모씨가 1층 그녀의 집에 방문했을 때, 이미 그녀는 싸늘하게 죽어있었다고 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
또 하나의 죽음이 있다. 로봇영재로 알려진 한 청년의 죽음이다. 그 청년의 사망원인은 자살(自殺).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청년은 카이스트에 입학할 때부터 주목받던 청년이었다. 왜냐하면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서 카이스트에 입학한, 대단히 희귀한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카이스트에 입학한 그 청년은 입학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아서 자살을 선택했다. 이 두 청년의 죽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두 청년은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던 젊음이었기 때문이다.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그 두 청년은 왜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고 말았을까.
아사로 죽은 그 작가의 경우에는, 제작사로부터 받지 못한 돈들로 인한 생활고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영화 제작사와 시나리오 계약을 맺었지만, 그 시나리오가 영화화되지 못하면서 지급받아야 할 돈을 제때 지급받지 못해서 생활고가 극심해졌던 것이다. 거기다가 가지고 있던 질병인 췌장염은 제때 치료받지 못해서 더욱더 심해졌고 거기에 극심한 생활고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항간에는 그녀가 그렇게 생활고가 극심했었다면, 알바를 하거나 다른 일을 찾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왔고, 그 꿈을 거의 성사하는 직전단계까지 갔다. 그 상황에서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는 것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몸에는 지병이 있는 상태였다. 그 작가의 나이는 32세. 일반적인 기업체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도 어려운 나이다.
자살을 선택한 그 청년의 경우에는, 학업 부진에 의한 스트레스가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뽑히고 있다. 카이스트 같은 경우에는, 1학년부터 전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고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카이스트에 입학했던 그 청년이 느꼈을 스트레스가 짐작된다. 솔직히 일반적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입학했을 때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면 과연 그 수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고등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나는 이 제도자체가 고등학생들에게 사실상 영어 사교육을 강요하는 시스템이 아닐까 한다. 3, 4학년 때에 영어수업을 진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영어 수업을 따라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개개인의 노력부족으로도 간주될 수 있다. 2년간의 영어 수업을 준비할 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등학교에서 갓 올라온 청년에게 전공을 포함한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시스템이다.
거기다가 카이스트 같은 경우에는 모든 학비가 면제 된다. 그러나 학점이 3.0이 되지 않으면 학비를 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청년 같은 경우에는 영어 수업으로 인해 학점이 3.0이 되지 않았고 그것이 그에게는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거기다가 징벌적 등록금제라고 해서 기존 등록금이 200만원이면 학점이 안될때 최대 600만원까지 더 내야 한다고 한다. 수업 못 따라가서 공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돈까지 더 내야하는 것이 그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것은 분명하다. 혹자는 왜 따라가지도 못할 카이스트에 진학했냐고 지적하지만 그 주장은 타당해보이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런 욕구를 가지고 그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지적할 수는 없는 법이다. 솔직히 카이스트에 합격했는데, 카이스트에 진학하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청년들이 꿈을 꾸게 하려면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자기가 가진 그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가 끝까지 도전했지만 끝내 실패했을 때 이 사회는 그 자들에게 새로운 재도전의 기회는 주어야 한다. 모두가 평등하게 살자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기회는 공평하고 주자는 이야기다. 만약에 그 작가의 집이 부유했다면, 그 작가는 그 꿈을 결국은 이루지 않았을까. 만약에 그 청년의 집이 부유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영어 사교육을 받았다면 그 청년은 결국 그 꿈을 이루지 않았을까.
이 사회가 청년들에게 어떻게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인가에 대한 진정한 고민. 계속해서 해야 하고 또 진정한 변화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꿈을 잃은 청년들만이 가득한 사회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나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지 한번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