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정치적 올바름은 인간의 자유로움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누군가를 계도하고 분류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필자가 차별주의자이거나 혐오주의자라는 의심이 든다면, 역시 내 생각이 맞는 것이다.) 헤어질 결심에 불륜이 나와서 불편했다는 평론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20년 전에 첨밀밀 같은 영화는 어떻게 봤던 걸까? 그렇게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고 싶다면 박정희 정권의 유신시대로 돌아가면 된다. 사전심의해서 불편한 장면은 마음껏 잘라내면 된다. 아니면 북한처럼 선전영화만 만들게 하던가. 제발, 영화는 영화로 보면 안되는 것일까.
항상 박찬욱 영화는 주인공이 특이한 사람이었다. 북한군 병사와 초코파이를 나눠먹는 국군 병사인 이병헌, 몇 십년째 감금당한 최민식, 정신병원에 입원한 정지훈, 흡혈을 하는 신부가 된 송강호, 은밀한 성사업을 하는 일제강점기의 부자인 조진웅. 거기에 비하면 '헤어질 결심'에 박해일은 다소 평범한 인물이다. 우리나라의 경찰 수가 약 10만명 정도로 되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최연소 경감 승진이라는 굉장한 능력자이긴 하지만 항상 특별한 인물이 주인공이었던 박찬욱 영화에서 '헤어질 결심'의 박해일 정도면 뭐 평범하다고 봐도 큰 무리는 아닐 듯 싶다. 아마 감독은 평범한 주인공을 통해 현대 한국인이 겪고 있는 일상을 그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의 짧은 사회생활을 통해 얻은 깨달음 중에 반드시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은 반드시 댓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나는 업무 중에서 만난 관계라던지, 그렇게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관계에선 거의 완전한 거세상태에서 일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떤 구설수에 휘말렸을 때 예상치 못하게 그것이 업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묘한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과 일을 하게 된다든지 하는 경우 말이다. 영화에서는 탕웨이가 등장하는데, 탕웨이도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리무라 카스미가 등장했다면 더 공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뭐 어쨌든.
이 영화는 안개가 가득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그런 경우들의 아주 극단적인 if스토리를 보는 듯 했다.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박해일이 아니니까 계속해서 용기없는 일상을 살아갈테지만... (사실 이 경우에는 용기를 내는 것이 오히려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산을 좋아하니까 영화에서 등장한 호미산이 어디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한번 검색을 해봤더니 의령에 호미산이라는 곳이 있다. 의령의 호미산은 호랑이 호虎자에, 꼬리 미尾자를 썼다. 흔히 호미라는 단어를 들으면 농기구나, 힙합에서 추임새로 자주 쓰이는 단어를 떠올릴 것 같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다. 영화에서 호미산에서 탕웨이가 헤드랜턴을 끼고 나오는데, 헤드랜턴에 비쳐진 탕웨이의 표정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였다. 일상에서 사랑에 빠지는 어떤 구체적인 상황 중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