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노매드랜드' 스포일러 있습니다.
우리의 젊은 세대가 왜 이리 공정에 목말라하는 것일까. 그들이 왜 이렇게나 공정에 굶주려 있는 것일까.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인생 전체가 불공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렇게나 젊은 꼰대가 많은 걸까? 그들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이른바 노오오오력으로 스스로 쟁취한 것이니, 자기보다 조금 아래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지금의 20대는 19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났다. 1990년대 중후반에 뭐가 있었나? 아... IMF.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는 적어도 고등학교 까지는 균등한 교육을 받고 살아왔다. 국제고나 과학고 같은 특수교육기관도 있었지만 특수교육기관은 딱 거기까지였다. 부일외고도 있긴 있었지만, 그리 편차치가 높지 않았다. (나도 원하면 갈 수 있었다.) 그 덕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다음에 생각보다 학교가 너무 좋아서 놀랬던 적이 있다. (유명한 학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입학하고 나니,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단한 학교였다.) 14대 대통령과 19대 대통령을 배출했던 부산의 그 학교다. 그리고 내가 졸업하고 몇 년 후, 그 학교는 자율형 공립학교가 되었다. 내 친구 중 일부는 양산대(국립)에 입학했는데 졸업할 때는 부산대(국립) 졸업장을 받았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역설적인 이야기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의 가장 빈곤한 계층을 보여준다. 양동이로 변기를 대신하고, 키친타올로 뒤를 처리한다. 페이가 좋은 아마존 일자리는 몇 개월 단위로 계약이 이루어져서 왔다갔다하고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 위해 언제든지 밴 하나로 생활한다. 단돈 2,300 달러가 없어서 몇 년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친언니에게 연락하고 계곡에서 목욕을 한 후 만나러 간다.
미국의 중산층으로 살고 있는 친언니집에서의 모임은 주인공에게 여러모로 낯설기만 하다. 2008년 경제위기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고 집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산에 투자하여 큰 돈을 벌었음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청춘을 바쳤던 엠파이어시(市)의 모습이 나온다. 그녀가 일했던 공장은 문을 닫았고 도시 자체가 폐허가 되었다. 그녀가 살았던 집에서 만난 멋진 풍광이 폐허가 된 엠파이어시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엠파이어(제국)는 몰락했다.
그래서 노매드랜드(유랑자의 땅) 라는 제목은 역설적으로 매드랜드(미친 땅)로 느껴진다.
며칠전 지방에 갈 일이 있어서,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내 첫 직장이 있는 공장에 갔었다. 여전히 성업중이었다. 다행이었다. 아직은... 집에 돌아오니 2월 이후, 꺼져있던 보일러 난방이 켜져있고 새 런닝셔츠가 두 개 있고, 새 이불이 있다. 내가 엄마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이럴려고 그 말 한 건 아닌데.
내가 이 모자를 그렇게나 쓰고 다니는 건, 역설적으로 내 삶이 비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