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에, 나는 한국대표팀이 준결승에만 가도 잘한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왜냐하면 한국대표팀에는 타자를 압도할만한 확실한 에이스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호성적을 거두었던 2006 WBC부터 2009 WBC까지 대표팀에는 확실한 에이스가 두어명씩 꼭 있었다. 2006 WBC에는 박찬호와 서재응이 있었고 2008 베이징올림픽에는 류현진과 김광현이 있었다. 이 선수들이 MLB에서도 얼마나 잘했나. 반면 지금의 대표팀 멤버 가운데에서, 특히 투수는 MLB에 가서도 잘 던질 수 있는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KBO리그는 평균구속이 MLB나 NPB보다 느렸긴 했으나 그 갭이 크진 않았다. 국제대회는 리그 최상급 투수가 출전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국제대회에서 평균구속은 그 차이마저도 줄어들었다. 반면 지금의 KBO리그는 MLB보다는 평균구속이 10km/h이상 차이가 난다. NPB 또한 150 이상을 던질 수 있는 투수들이 즐비하며 이번 대표팀에서도 전원 150 이상을 던질 수 있다. 반면 한국대표팀은 150 이상을 던질 수 있는 투수들이 기껏해봐야 한 손에 있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수준이다.
야구는 결국 투수가 프리오리테(펜싱 사브르에서의 공격우선권)를 쥐고 있는 종목이다. 타자가 아무리 타격을 잘한들 투수가 홈플레이트로 공을 던지며 플레이가 시작되기 때문에 타자도 대응의 영역에 있을 뿐이다. 물론 투수의 구속증가 과정에는 부상위험이 증가하며 NPB나 MLB보다 선수층이 얕은 KBO가 선수의 구속향상에만 포커스를 두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타자의 기량향상을 위해 투수가 구속을 더 끌여올려야 한다는 게 이번 올림픽으로 증명된 게 아닌가 싶다.
기가 막힌 로케이션이든, 믿을 수 없는 무브먼트든, 기본적으로 구속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공허한 손장난에 지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