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야구가 끝나면, 내가 응원하는 NC다이노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남기곤 했었다. 근데 올해는 쓸 말이 없다. 야구를 1회부터 9회까지 끈덕지게 앉아서 본 게임이 아예 없다. 그나마 직관을 많이 다닐때에는 일년에 10게임 정도는 봤으니까 그 지점들을 이어나가며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는 있었지만, 그마저도 올해는 직관을 두번인가 밖에 하지 못했다. 1년에 치르는 144게임 중에 1회부터 9회까지 끈덕지게 본 게임이 단 2게임인데, 그 사람이 NC의 1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야구는 데일리 스포츠이다. 일단 습관이 되고 나면 컨텐츠는 자고나면 쌓인다. 하이라이트를 쭈욱 지켜보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반대로 습관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시 습관으로 만들기가 참 힘들다. 마블유니버스를 중간에 한번 빠뜨리면 다시 시작하기가 힘든 것처럼, 야구도 습관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시 그 습관을 만들기가 힘들다. 일단 지금 이시기에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저녁 3시간에 4시간 정도를 빼낸다는 것 부터가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기계발도 해야하고, 등산도 해야하고, 밀린 영화도 봐야하고, 몇 명 안되는 친구도 만나야 되고, 여자배구도 봐야 한다. 야구는 6시 30분에도 하고 있고 7시 30분에도 하고 있고 8시 30분에도 하고 있고 9시 30분에도 하고 있다. 운 나쁘면 10시 30분에도 하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이것만 하고 야구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다른 것들을 하다보니, 야구를 보는 습관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야구를 안보는 습관이 들고 나니까 하루에 3시간 이상씩 야구를 보는게 낭비같이 느껴졌고 어느순간 7회부터 9회까지만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더이상 야구매니아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후반기부터 9회까지만 게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박수를 쳤다. 9회까지만 하면 소요되는 시간은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고, 그 안에 임팩트있게 하면 질질 늘어나는 게임보다 훨씬 흥미롭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분명 무승부가 폐지된 초반부에는 인상적인 게임이 있긴 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순위가 고착화되고 무승부가 없어지니까 게임은 더 루즈해졌다. 그리고 리그가 진행되는 중반에 9회 무승부제가 도입되면서 전반부에 상위권을 하고 있는 팀이 더 유리해졌다. (현재 KBO는 승률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무승부를 하게 되면 분모가 되는 게임수에서 삭제가 된다. 그 삭제되는 양만큼 분자가 커지기 때문에 원래 승률이 높은 팀일수록 1무승부의 효과는 더 크다. 축구와 같은 승점제가 아니기 때문에 가져오는 폐단이다.)
또 무승부를 하게 되면 막아야할 이닝의 숫자는 줄어들기 때문에 투수들의 휴식과 기량향상에도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딱 이닝이 9회까지 정해져있으니까 애매한 순간이 되면 나오는 투수만 더 나왔다. 심지어 더블헤더 경기에 다 나오는 필승조 불펜투수도 있었다. 하지만 9회 무승부제는 취지만 잘 살린다면 좋은 제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야구가 국제대회에서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둘려면 반드시 투수력이 더 향상되어야 한다. 1년에 9이닝 144게임으로 딱 고정해놓으면 의외로 장점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어떤 형식으로든 보완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또 한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NC다이노스의 호텔술판사건이다. 전국민이 코로나 방역에 신경쓰고 있는 와중에 인기를 먹고 사는 프로야구선수가 방역수칙을 어겼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나같은 경우에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확진판정을 받은 외부인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주일동안 점심시간에 밥을 안먹었다. 과체중 몸 만드느라 고생한 내가 밥을 먹지 않았다는 것은 큰 사건 중에 하나다.
물론 일부에서는 징계가 과하다, 시범케이스로 걸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있긴 하다. NC 선수들이 받은 징계를 그 이후에 걸린 다른 팀 선수들이 받은 게 아니니까 시범케이스가 맞는 걸지도 모른다. 시범케이스라는게 법적으로 보면 문제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억울한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법적으로는 프로야구선수가 팬들의 정중한 사인요청을 경멸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억울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작년부터 지금까지 KBO와 10개 팀들은 코로나 시국에서 모범적으로 대처를 해온 것은 맞고 술판사건이 벌어질 때 약간 사회분위기가 풀어지고 있기는 했지만 다들 첫 타자가 안되기 위해서 몸을 사리는 시점에 NC선수들이 딱 나온 것도 맞기 때문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외부인 여성 2명이 동석한 것 가지고 미디어에서 각종 이상한 추문들이 나온 것이다. 솔직히 총각이 호텔에서 외부 여인 만나는 게 잘못됐나. 코로나 시국이 문제였던 것이지 총각 2명이 호텔에서 외부인 여성 2명을 만나게 뭐가 문제일까. 그냥 뭐, 나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NC총각 2명이 호텔에서 외부 남성 2명을 만나는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이것도 성소수자 인권침해 발언인가... 물론 그것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NC다이노스 선수들의 술판사건이 있었고, KBO이사회는 리그중단을 결정했다. (단, 롯데는 끝까지 리그중단을 반대했다.) 리그중단 이후 KBO리그를 바라보는 팬들의 여론은 악화되었고, 모 미디어를 통해 NC다이노스 구단의 방역수칙 위반과 은폐 정황이 보도되었다. 결국 NC다이노스는 김택진 구단주가 직접 사과문을 발표하고, 다이노스 야구팀의 사장과 단장이 옷을 벗었다. (이 단장은 작년 NC다이노스를 우승으로 이끈 단장이었다.) 술판사건에 속해있던 선수들도 후반기 모든 경기를 출장정지 징계를 하여 자체적으로 시즌아웃으로 처리했다. 술판사건에 연루된 4명 모두 1군 주전선수들이었고 작년에는 대체선수대비 12.28승을 더 가져다준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그 선수들이 빠지면서 작년 우승팀 NC는 올해는 7위로 추락했다. 어쨌든 NC다이노스는 여러모로 악화된 여론에 대한 성의는 차고 넘치도록 보였다. 근데 한가지 남는 의문은 정지택 KBO총재는 술판파문과 리그중단 사태 말고도 다른 의혹이 차고 넘치는데 왜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야구가 끝나는 날은 1년 중 가장 슬픈 날이다. 1년을 마무리하는 연례행사 중 가장 처음으로 맞이하는 행사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KT위즈의 우승을 보면서 대단한 팀이 나타났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년에는 광주에서, 창원에서, 수원에서, 서울에서 더 많은 야구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이 계속 되어야만 하듯이, 내가 사랑하는 야구도 반드시 계속 되어야만 한다.
NC여, 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