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아가씨와 패왕별희를 봤다. 아가씨(박찬욱 作)는 처음 본 것이었는데, 엄청난 영화였다. 2016년에 개봉한 영화인데, 한참 영화를 많이 보던 시절이라 왜 안봤을까 하고 한참 생각해봤다. (심지어 박찬욱 영화다.) 그러다가 오늘 답을 찾아냈다. 당시에 주인공이 동성애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 봤던 것 같다. 세상을 만고 흑백논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 세상이라, 잠깐 첨언하자면 당연히 동성애자들 차별해서도 안되고 혐오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내 돈 내고 그 사람들이 서로 막 좋아서 즐기는 영상을 보고 싶지는 않다는 주의인지라, 그때 당시에 어쨌든 이 영화를 피했던 것 같다. (이건 이성애 멜로영화도 마찬가지다.)
뭐 어쨌든, 영화 자체는 동성애 영화라기 보다는 그냥 한 인간이 해방을 하게 되는 그 과정을 너무나 멋진 미술작품으로 그려낸 영화였다. 김태리야 원래부터 좋아하는 배우였지만, 김민희는 엄청난 배우였다. (몸매나 외모도 엄청났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 왜 작품활동 안하는 걸까? 불륜 때문일까... 그런데 불륜 좀 하면 어떤가. 참 불편한게 많은 세상이다.
패왕별희(첸카이거 作)도 아마 감독판? 그런 것 같았다. 내가 전에 이런 장면을 봤었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근데 개인적으로는 아가씨보다 패왕별희가 더 페미영화처럼 느껴졌다. 성별은 남자지만 여성적인 성역할을 강조받고 그것을 온 삶을 통해 연기해내며 심지어는 그것에 온전히 삶이 집어삼켜지는 장국영의 모습에서 전근대 사회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나의 할머니와 나의 엄마가 생각났으니까. (근데 나는 '엄마'는 '엄마'로 부르고 싶다. 나에게 다른 용어를 강요하지 말라.)
이번에 집중해서 본 캐릭터는 공리가 맡은 쥬샨이었는데, 술집마담 앞에서 자기가 모은 돈을 다 내놓고 당당히 나가는 그 모습과 최후의 모습이 오버랩되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사회에 큰 혼란이 오면 가장 먼저 죽어가는 사람은 가장 약한 사람들이구나 (아주 먼 과거의 일까지 끄집어내져서 조리돌림당해져서...) 하는 생각도 하면서.
아가씨는 영화를 보면서 낭독회에서 집중하고 있는 아재들 중에 한 명이, 내가 되는 것 같아서 이 기묘한 체험은 무엇일까 하고도 생각했다. 실제론 안했으면서 엄청난 일을 한 것처럼, 담배를 한 대 빨며 엄청난 미사여구를 붙여서 묘사하는 그 장면에서도 묘한 기시감을 느꼈었다. 나는 여자가 아니니, 여자의 입장은 모르겠으나 남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안좋은 쪽으로 묘한 기시감을 많이 느꼈던 영화였다. 뭔가 전체적으로 뜨끔하는 장면이 굉장히 많았다. 감독님이 여러 장면에서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혀가 새까만 놈이든 안새까만 놈이든 대다수 인간의 속은 시커멀 것이다.
하... 근데 나는 술먹다가 후배불러내서 섹스를 해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