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은 2년전, 창단 후 첫 꼴지로부터...
시작은 2년전(2018 시즌) NC의 창단 첫 꼴지에서부터였다. 다이노스 개혁의 시작이었다. 다이노스의 시작을 함께한 감독은 시즌 중 자진사퇴의 형태로 물러난 뒤였다. 프런트의 앞에는 많은 과제가 있었다. 감독의 선임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재편, 선수단 분위기 전환, 내부 시스템 정비, 적절한 전력보강까지. 다이노스의 2020시즌 우승은 망한 팀이 어떻게 리바운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교과서와 같다.
사실 KBO리그는 굉장히 보수적인 리그다. 한번 포스트시즌 경쟁권에서 멀어진 팀이 다시 올라오지 못하는 케이스를 얼마나 많이 목도했던가. 최하위를 기록한 팀이 이후 2시즌 이내 우승을 차지한 케이스는 최동원의 미친 하드캐리로 우승을 가져왔던 1984년의 롯데, 전 우주의 기운이 몰렸던 2009년의 기아를 제외하면 2020년의 다이노스밖에 없다. (세 시즌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필승V전략을 앞세운 1992년의 롯데)
한가지 다행인 것은 선수단 구성이 아직 젊었다는 점이다. 포스트시즌 컨텐더에서 떨어진 팀은 대부분 기둥이 되는 선수들의 노쇠화 및 FA이적이 그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다이노스는 기둥이 되는 나성범, 박민우, 이재학, 구창모 등등이 아직 30대가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것말고는 해볼만한 게 없었다.
2018년 6월 단장대행으로 선임되었던 김종문은 당년 10월 정식 단장으로 임명되었다. 당년 10월 17일 잔류군 수비코치였던 이동욱(현 감독)을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10월 24일 손민한(현 1군 투수코치)이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11월 23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연수 중이던 이호준(현 1군 타격코치)이 타격코치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2018년 12월 11일 FA계약(4년 125억)으로 양의지가 영입되었다.
그와 함께 프런트에서는 내부 시스템을 정비하였다. 이른바 '다이노스볼' 이라는 새로운 보상체계가 도입되었다. 게임 내 보상체계 하나만큼은 기똥차다고 평가받는 NC소프트와 다르게 NC다이노스는 보상체계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온 덕이었다. 메이저리그 엔트리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보상체계인 이른바 '다이노스볼'은 선수단에 동기부여를 일깨워주는 시스템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융합되었기에 2년만에 다이노스는 리바운드 할 수 있었다. 만약에 지금의 NC다이노스가 왕조라면 김종문 단장을 필두로 한 프런트는 정도전일 것이다.
2. 5월 13일부터 11월 24일까지 1위. 이미 넌 1위가 되어있다.
올시즌은 엔씨야구를 본 이래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게 야구를 지켜본 시즌이었다. 말그대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그 자체였다. 이렇게 야구가 쉬운 것이었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사상 초유의 COVID19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리그 개막은 5월 5일로 평상시보다 약 40일 정도 늦어졌다. 그리고 8게임을 치룬 5월 13일 이후 한국시리즈가 끝난 11월 24일까지 1위를 질주했다.
전반부는 구창모의 눈부신 호투로 정리될 수 있다. 구창모는 7월 26일 KT위즈전까지 87이닝 9승 0패 ERA 1.55를 기록했다. 엔씨야구 역사상 한국국적의 야구선수중 가장 압도적인 선발투수가 바로 구창모였다. 구창모의 활약을 바탕으로 작년에 에이스의 역할을 맡았던 루친스키의 활약, 마이크 라이트와 이재학이 꾸준히 이닝을 책임져 주었다.
타선에서도 돌아온 나성범을 필두로 갑자기 포텐이 터져버린 강진성, 클래스는 영원함을 보여준 양의지와 박석민, 야구 정말 쉽게 하는 박민우와 이명기, 수비형 유격수에서 공격형으로의 전환에 성공한 노진혁, 그리고 KBO리그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두번째 클린업으로 남을 애런 알테어와 권희동까지. 홈런 잘 나오는 창원NC파크에서 새로운 홈런 군단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시즌 시작 전, if스토리를 소개하는 모 스포츠지의 기사대로 되었을 때의 모습이 바로 2020년의 NC다이노스였다.
물론 불펜진에서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세에 흐름을 미칠만한 것은 아니었다. 클로져인 원종현까지 가는 길목에서 젊은 불펜들이 서서히 지쳐나갈 때쯤 문경찬과 박정수의 수혈이 있었고 때를 같이하여 임창민, 김진성과 같은 베테랑들이 기적적으로 돌아왔다. 특히 김진성은 8월 27일부터 10월 9일까지 무려 22경기 연속 비자책을 기록하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가는 로얄로드로 안착시켰다.
3. 다시 만난 베어스. 팀 다이노스, 우승을 집행하다.
2020년 한국시리즈의 맞상대는 '숙적' 두산 베어스였다. 다이노스는 중요한 무대에서 얼마나 많이 베어스를 만나서 분루를 삼켰던가. 아직도 2016년의 한국시리즈 전적 4:0 패배가 잊혀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시 다이노스는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소득점(2점)의 기록을 세웠다.
1차전은 운좋게도 고척돔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 게임을 보면서 마치 컴퓨터 게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투수의 볼카운트마다 옮겨지는 수비위치, 그로 인해 결정적인 순간에 엮어낸 더블 플레이, 철저히 계산된 투수교체 때문에 뚝뚝 끊기는 베어스 공격의 흐름, 타구가 마치 어디로 갈지 알고 있는 듯한 야수들의 움직임 등등. 모든 것들이 마치 알파고가 선수들을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바둑의 정석 따위 무시하면서 정체불명의 움직임이 이어지지만 끝나고 보면 항상 반집차로 승리하는 그 알파고 말이다. 물론 다이노스 팀의 데이터 분석에 AI가 사용된 것은 아니다. 그만큼 데이터 분석이 세분화 되어 있고 그것을 토대로 코칭스태프의 준비가 잘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운도 매우 좋았다.
2차전도 고척돔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 2차전은 1차전에서 다이노스가 모든 운을 소진해버린 나머지, 베어스에게 모든 운이 쏠린 것 같았다. 다이노스의 타구가 별다른 수비시프트를 쓰지 않고 있는 베어스의 수비수 정면으로 다 가버린 것이다. 심지어는 투수의 발을 맞고 노바운드 패스로 타자와 주자가 모두 죽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3차전은 치열한 공방전이었는데, 내심 이번 시리즈가 어렵지 않겠나 싶은 순간도 있었다. 박민우가 4회초 나성범의 적시타에 홈으로 들어오면서 세이프 판정을 받고 난뒤, 식빵을 굽는 모습을 본 후였다. 선수단이 엄청난 중압감에 맞서고 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4차전에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매번 한국시리즈를 볼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1위팀과 플레이오프를 거쳐서 올라온 팀의 결정적 차이는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마주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힘이다. 정규시즌을 1위로 마쳐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팀은 예상치 못한 위기에 마주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힘이 남아있어서 한 두어번 그런 위기를 마주치더라도 극복할 수 있다. 반면 플레이오프를 거쳐서 올라온 팀은 위기에 마주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힘이 부족해서 한번의 위기에도 쓸려나간다. 4차전은 베어스 붕괴의 시발점이었다.
나는 그 시발점이 바로 6회초, 이명기의 타석 때 수비요정 김재호의 실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김재호가 그런 수비를 보여준 적은 평생 통틀어서 손에 꼽을정도가 아닐까. 물론 송명기의 활약, 루친스키의 하드캐리가 4차전을 감돌고 있었지만, 샅바를 맞잡고 있던 상대방이 먼저 무릎을 꿇어준 것이나 다를바 없었다. 꽤나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4차전을 승리하고 맞이한 5차전부터는 정규시즌의 NC다이노스였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그 자체였다. 2020년 대한민국의 야구가 끝난 11월 24일. 한국시리즈 전적은 4:2, 최종전 승리도 4:2, 챔피언은 NC다이노스였다.
4. 내가 뽑은 정규시즌 MIP(가장 인상적인 선수)와 한국시리즈 MIP
올해의 승리는 팀 다이노스 모두의 승리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려다가 나승븜이가 구단 V-Log에 찍은 영상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정규시즌 MIP는 최근 10년동안 우승팀 중 스탯티즈 기준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리그에서 가상의 대체선수가 1의 수치를 가진다고 가정한다. WAR가 5.95라는 뜻은 혼자서 5.95승에 더 기여했다는 뜻이다.)가 가장 좋은 배터리(에이스+주전포수)였던 루친스키와 양의지다.
루친스키와 양의지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NC다이노스의 기막힌 리바운드의 한가운데에서 2년동안 맹활약한 선수다. 양의지는 선수 한명을 넘어서 팀 전체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며 팀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년에 스탯티즈 WAR 기준 6.61을 찍어서 그 '에릭 테임즈' 다음으로 가장 높은 WAR을 기록하더니 올해도 5.95를 기록하며 통산 6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세부성적은 151안타, 33홈런, 124타점, OPS는 1.003이다.
루친스키는 WAR 5.59를 찍어서 2013년의 찰리, 2015년의 해커에 이은 통산 3위의 성적이다. 정규시즌 성적은 30게임에 선발출장하여 19승 5패 183이닝을 던졌고 평균자책점은 3.05, 167개의 삼진을 잡을 동안 고작 57개의 볼넷을 내줬다.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인상적인 선수는 나성범과 김진성이다. 시리즈를 시작하기 전, 키플레이어가 공격에는 나성범, 수비에서는 김진성이 될 것이란 생각이 있는데 두 선수의 맹활약 속에서 다이노스는 승리할 수 있었다.
나성범은 시리즈 6경기 모두 출장하여 중요한 순간마다 마침표를 찍어줬다. 특히 1차전에서 1회말 나성범이 가볍게 밀어치며 마수걸이 타점을 기록하였고, 8회말에는 선두타자로 출루하여 득점에 성공했고 5:3으로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첫 승을 거두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3차전에서는 팀 전체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팀 득점인 6점 가운데 4점을 혼자서 쳐내며 팀을 이끌었다. 5차전에서는 포스트시즌 동안 무적의 모습을 보인 플렉센을 맞아 두번의 안타를 기록하며 이후 타석에 들어선 양의지의 홈런으로 팀이 이기는 결승타점의 주자로서 활약하였다. 세부성적은 타율 0.458, 11안타, 1홈런, 6타점이다.
김진성은 시리즈 6경기 모두 출장하여 선발투수가 내려간 다음 올라오는 두번째 투수로서, 결정적인 순간에 찬물을 끼얹는 소방수의 역할을 120% 충족하였다. 특히 인상적인 순간은 4차전이었다. 살얼음판 같았던 그 승부에서 신인투수인 송명기가 내려가고, 6회말 등판하여 루친스키가 올라왔던 7회말 1사 1루상황까지 든든하게 마운드를 지켰다. 최주환-김재환-페르난데스로 이어지는 클린업을 상대로 무실점 무안타를 기록했다. 세부성적은 6과 3분의 2이닝동안 4삼진, 0볼넷, 5피안타, 3홀드, 평균자책점은 0을 기록했다.
※ 신인선수 중 가장 인상깊은 선수는 올해는 쉽니다. (프런트놈들이 하도 트레이드를 해서... 굳이 뽑자면 송...?)
달 감독님... 보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