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있습니다.
※ 헝가리 유람선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기원합니다.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을 처음 보고 소소하게 괜찮네 라는 생각을 했다.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지만 과연 그 정도까지 대단한 영화인지 와닿지 않았다. 무릇 어떤 영화제가 그러하듯, 이 영화가 대단하다기 보다 그 감독의 전 영화가 대단하기에 상을 줬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자꾸 생각났다. 그래서 영화를 한번 더 봤다. 보고 나니, 이 영화는 마스터피스라고 인정하게 됐다.
봉감독님 리스펙! 뉴욕 헤럴드 트리뷴!!
영화를 처음보고 나서 스포일러가 가득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었다. 이후에 봉준호가 나와서 스포일링 하지 마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글을 비공개로 돌릴까 하다가 안 돌리기로 했다. 나는 기자도 아니고 영화계 종사자도 아닐뿐더러는 영향력이 많은 블로거는 더욱더 아니다. 일개 한명의 관객일 뿐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이 스포일링 하지 마라고 이야기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따르고 말고는 일개 관객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악질적인 스포일러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므훗한 그림이 나오다가 갑자기 영화의 결말을 다 공개하는 움짤같은 것이나 영화와는 상관없는 기사에 댓글로 영화의 결말을 공개해버리는 것 같은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의 감상을 블로그에 적으면서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를 쓰게 되는 내용까지 관객 스스로가 제약해야할 것인지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것까지 관객이 블로그에 감상을 적으면서 스스로 제약하게 된다면 그건 예술가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자기검열의 또다른 형태 아닌가. (물론 우연히 내 블로그에 온 사람들을 위해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한 장치는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앞으로도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스포일러 하지 마라고 해도 나는 지키지 않기로 했다.
봉준호는 양극단에 있는 것들을 하나로 버무리는데 대단한 힘을 가진 감독이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힘과 발로 범인을 쫓는 형사와 과학과 머리로 범인을 쫓는 형사를 붙여두었다. '설국열차'에서는 머리칸과 꼬리칸의 지도자를 묘한 형식으로 연결해 두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양극단의 공간이 수시로 교차한다. 송강호가 그의 영화에서 페르소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치열하게 대립하는 양극단에서 중간 사이를 어버버하면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깔끔한 접시로 가득한 부엌의 진열장과 지하실의 오래된 찬장. 이선균이 사는 깔끔한 집과 송강호가 사는 반지하 집. 천둥이 치고 비가 오는 날, 마당에 쳐진 인디언 텐트와 수재민이 단체로 모여서 잠을 청하는 체육관.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송강호 일가가 이선균의 집에서 몰래 빠져나와 비를 맞으며 남루한 터널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리플리'를 보듯이 송강호 가족의 사기행각이 성공하길 바랬다. 그러나 이선균 가족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모든 판타지는 끝이 난다. 그 순간 영화는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영화는 한마디로 말해,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라는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사진의 장편영화 버전이다.
영화의 소재 중 중요한 것은 2개다. 송강호의 냄새와 이선균의 선(線)이다. 학력도 위조하고 지식도 위조할 수 있지만 냄새는 위조할 수 없다. 박찬호도 미국에 처음갔던 시기에 김치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일 밤마다 버터를 몸에 바르고 잤다고 한다. 냄새는 가장 원초적이다. 그래서 숨기고 싶은 나의 정체를 까발려 준다. 멋진 차, 꿈같은 집, 같이 장을 보는 기가 막히게 이쁜 집사람. 그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송강호에게 냄새는 현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장치다. 냄새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이다.
이선균의 선(線)은 극 중에서 사람관계에서의 선을 이야기 한다. 그가 말하는 선이란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를 통해서 생성된 선이다. 이선균은 피고용인이 고용인의 선을 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반대로 그는 피고용인의 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운전기사에게 아들 생일파티에 인디언 분장을 하고 재롱을 떨게 한다. 그것은 고용인이 피고용인의 선을 넘은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이선균이 말하는 선이란 돈과 서비스를 주고 받는 계약의 구조가 아니라 조선시대 식의 양반과 상놈의 계급구조처럼 보인다.
나는 치킨을 파는 외식업 종사자다. 치킨배달을 갔는데, 아줌마가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난리를 피운 적이 있다. 내가 전표에 찍힌 시간을 보니 주문전화를 받은 시점에서 40분 정도 걸렸다. 그래서 내가 설명을 해드렸다. 미리 치킨을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 주문이 오면 만들기 때문에 40분 내외 정도는 걸릴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자 아줌마는 더 역정을 냈다. 왜 자기를 치킨배달이 40분 정도 밖에 안걸렸는데 화내는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느냐는 것이었다. 그때 그 욕을 들으면서 느꼈던 것은, 이 사람은 나에게 치킨을 산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상놈 역할을 해줄 누군가를 샀다는 것이었다.
※ 아, 우리집 치킨박스는 우리가 접는다.
송강호가 남의 아들에게 인디언 분장을 하고 재롱을 떠는 사이, 막상 자기의 딸인 박소담은 지하에서 올라온 이상한 새끼한테 바로 칼에 찔려 죽는다. 이선균은 지하에서 올라온 새끼의 냄새에 기겁을 하고 그 순간 송강호의 눈에는 기묘한 현실이 들어온다. 돈과 서비스를 주고받는 고용관계이지만 사실은 기묘한 계급구조로 형성되어 있는 현실과 그 안에서 하위계층끼리 서로 치고받고 서로 죽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부산의 모대학에 다닐 때였다. 거기서 아마 교수님께 웃기는 방법을 안가르치는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교수님의 강의시간에 한껏 노리고 만든 웃음포인트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강의를 듣던 사람들은 웃어야 하는지 눈치채지 못하고 진지하게 말씀을 경청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교수님의 웃음포인트보다 그 상황이 더 웃겼다. 배우의 행동이 아니라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상황에 재미를 느낀다면 이 영화는 빵빵터지는 영화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별 재미를 못 느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스릴러 영화로 홍보했으면 더 흥행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코미디 영화로 치기에는 덜 웃기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영화 중에서는 마지막에 쓸데없이 관객에게 메시지를 주입하는 영화들이 꽤 나왔다. 국가부도의 날이라던가, 더 킹 이라던가. 이 영화는 적어도 그런 건 없다. 그저 깔끔하게 끝난다. 그래서 좋았다.
찝찝한 건 최우식의 목표가 연세대 입학에서 그저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바뀐 것이랄까. 더럽고 아니꼬우면 돈 벌어서 성공하시던가. 사람들을 모두 그런 식으로 내모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까? 정도로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은 감독의 아주 아주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2019년하면 '기생충'을 떠올릴 수도 있을 정도로 걸작이다. 난 아직도 2003년 하면 '살인의 추억'이 떠오르니까 말이다. 많이들 보실테지만 절대 추천. 꼭 보셨으면 좋겠다. 아, 박소담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