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있습니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일종의 월드컵과 같다. 평소에 K리그나 챔피언스리그를 챙겨보지 않더라도 월드컵은 본다. 그 이유는 월드컵은 단순한 축구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의 스타들과 남미의 스타들이 만나서 자웅을 겨루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큰 이야기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월드컵은 이야기와 이야기의 충돌이다. 멀리는 한국전쟁 직후 무려 64시간이나 걸려서 스위스 월드컵에 갔던 한국팀의 이야기에서 부터, 가까이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겪은 크로아티아팀의 결승진출 이야기까지 각각의 이야기를 가진 팀들이 하나로 뭉쳐서 또다른 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월드컵은 전세계가 열광하는 이야기의 축제인 것이다.
어벤져스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아이언맨 시리즈를 안봤다고 하더라도 어벤져스 시리즈는 본다. 마블 유니버스의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로 뭉친 이야기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마블유니버스 안에서 이야기의 축은 세 갈래였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캡틴과 아이언맨(원조 어벤져스)의 이야기, 우주에서 일어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이야기, 아스가르드에서 일어나는 토르의 이야기다. 그 세 이야기가 한데모여 대집성을 만든 것이 어벤져스 시리즈의 저번작 인피니티 워와 이번작 엔드게임이다.
이번 영화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마블유니버스를 이끌어왔던 두 히어로가 퇴장했다. 각각 사망과 은퇴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DC에 슈퍼맨이 있다면 마블에는 아이언맨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둘의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DC는 슈퍼맨의 죽음을 개별 영화의 한 스토리로 써먹어버린 반면, 마블은 거대한 시리즈에서 한 단계의 대미를 장식하는 방법으로 활용했다. 이게 DC와 마블의 지금을 만든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기존의 마블 유니버스에서 이야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공간이었다면 앞으로의 기준은 아마 시간이 중심이 될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통해서 멀티버스에 대한 개념을 소개한 이후 시리즈에서 지속적으로 멀티버스가 사용되었다. 극중에서 2014년의 타노스가 현재로 와버려서 인피니티 건틀렛으로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타노스가 살아서 생명의 반을 날린 세계가 하나 있고 타노스가 사라져서 반이 안날라간 세계가 하나 생겼다.
역설적으로 기존의 어벤져스 시리즈가 다뤄왔던 세계는 5년 이후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미래의 이야기가 되었고 타노스가 사라진 세계의 이야기는 인류의 반이 안날라갔기 때문에 현재의 이야기가 되었다.
타노스는 줄곧 자기가 필연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이 말은 타노스가 없더라도 생명을 위협하는 또 다른 필연적 존재가 있다는 것의 암시이다. 아마 타노스가 사라진 세계에서는 타노스를 대체할 다른 필연적 빌런이 나올 것이다. 그 세계에서는 블랙위도우도 죽지 않았기 때문에 블랙위도우가 주축으로 활동할 것으로 보이며, 호크아이의 다른 버젼인 로닌의 단독무비가 나올 수도 있다. 엔드게임에 로닌이 나온 것은 조금 뜬금없긴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번 엔드게임은 또 다른 의미의 마블 영웅들의 디아스포라인 셈이다.
이번 작, 엔드게임으로 마블의 1막은 내려갔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캡틴의 퇴장이다. 캐릭터에 대한 호오와 별개로 그가 등장한 영화는 항상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윈터솔져로 히어로물에도 정치 스릴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시빌워로 히어로의 자경활동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었다. 그의 방패를 이어받은 팔콘이 캡틴의 솔로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그 진지한 주제를 과연 잘 풀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