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BS 외화팀이 아주 개념차다. 신삼국 더빙판을 내놓더니, 금요일 밤마다 하는 명화극장이 그야말로 명작들을 방영하고 있다. 아비정전, 열혈남아, 무간도에 이어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까지.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동양영화 특집은 아주 만족스럽다.
더빙에 대한 호불호는 나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더빙을 해서 잘된 경우보다 잘 안된 경우도 꽤 있었고 원작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캐릭터가 더빙으로 인해서 완전히 달라진 경우에 그렇게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으니까. 이 작품도 그런 이야기거리를 불러낼 소지가 다분히 있다.
원작에서는 조제가 전반적으로 무뚝뚝한데 간혹가다가 귀여움이 묻어나오는 스타일이었다면, 이 더빙판은 조제가 전반적으로 귀여운데 간혹가다가 무뚝뚝함이 묻어나오는 스타일로 변해버렸다. 나는 이렇게 변한 모습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으므로 좋았다고 판단되지만, 이런 부분들은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둘이 한겨울의 바닷가에 놀러가는 장면인데, 그 사진을 보고 왜 조제가 별로 밝은 표정이 아니였는지는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4년전에 처음봤을때는 저 사진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조제는 이미 사토시(극중 이름은 잘 모르겠다. 츠메요였나?)와의 이별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뒤의 여관장면에서 조제는 사토시에게 너가 없으면 나는 다시 바다 깊숙한 곳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라고 이야기한다. 떠나가는 사토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토시를 잡고 싶은 마음에 조제가 한 말이었을 것이다.
조제는 우연히 들른 바닷가가 사토시와 함께하는 마지막 여행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밝은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던 것인게다. 어쩌면 그 이전의 휴게소 화장실장면에서 갑자기 들어와서 껴안은 사토시의 모습을 보고는 그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여자의 직감은 참 놀라울 정도이다.
영화를 끝나고 나서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제를 떠나고 우에노 쥬리에게로 간 사토시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운다. 영화의 첫 장면도 잘 기억할런지 모르겠지만, 사토시의 회상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사토시는 조제와 있었던 그 시간들을 영원히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가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반면에 조제는 너무도 쿨하게 오히려 더 당당하게 살아간다. 사토시가 없으면 바다 밑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닐 거라고 말한 것과는 달리 너무나 당당하게 장을 보러 다닌다. 난 마지막 장면이 정말 중요하게 봐야할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고기를 자르는 장면은 사토시와 처음 만날때의 장면과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는 장면이다. 부시시하게 머리도 제대로 빗지 않았던 조제가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고기를 자르게 되었다. 막상 버림받은 조제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