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단체로 모여서 야구응원가를 연습한 적이 있었다. 이제까지 해보지 못한 생소한 경험이라, 독특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부심도 생기는 순간이었다. 화랑기 결승에서 이뤄졌던 부산고와의 더비, 청룡기때 중앙고와 결승에서 붙은 기억들. 처음에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결국은 좋아하게 되었던 고교시절이었다.
우리 학교가 하는 야구경기를 따라다니면서 나는 우리학교 출신 야구인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 놀라운 이름을 발견했었다. 그 이름은 최동원이었다. 믿기지 않는 한국시리즈 4승 1패의 주인공. 그리고 그 이후에 최동원이라는 세글자는 우리 학교를 잘 모르는 어른들에게 우리 학교를 기가 막히게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놀라운 이름이 되고 말았다.
니 어느학교 다니노?
경남고 다닙니더.
거기 누구 나왔노?
김영삼이랑 최동원이 나왔지예.
그걸로 끝이었다. 학교가 얼마나 오래되었고 또 누가 나왔는지에 대한 더 어떤 이야기도 필요하지 않았다. 사실 김영삼은 잘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최동원만으로도 이미 충분했기 때문이다. 뺑뺑이로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졌던 묘한 자부심. 최동원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단지 그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부여하는 그런 이름.
친구랑 같이 경남고 야구유니폼을 맞췄을때도 최동원이라는 세글자는 등에 새길려고 했던 몇 안되는 명단중에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결국은 직접 그 활약을 보지못했다는 이유로 이대호가 선정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난 그가 공던지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가 내 삶에서 그리고 한 동문으로 엮어서 나에게 미친 영향을 작다고는 볼 수 없다.
잘 쉬세요. 굿바이 마이 레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