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서 솔직히 명쾌한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 아니면 현재의 삶에서 부딪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과거에서 찾아내어 해결하기 위해?
이 질문에 대해서 GY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그의 대답은 너무나도 두루뭉실하여서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 교수의 말은 간단했다. 둘 다 적용된다는 거였다. 둘 다. 그러니까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역사는 필요하고 그리고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에서도 역사는 필요하다는 답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비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다가 오늘 HE와의 마지막 수업에서 그런 질문을 다시 던졌다. HE는 잭구디의 책을 비판하면서 과거는 여러가지 유기적인 것들과의 연관으로 생성된 과거로서 보아야지, 온갖 것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논지를 뒷받침하려 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답변을 통해서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내릴 수가 있었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역사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이미 랑케때부터 부서졌다. 왜냐하면 랑케의 역사주의는 실증주의에 반대하는 낭만주의의 소생물인데, 낭만주의는 전체에서 함몰되는 독립적인 개체의 존재를 역설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독립적인 개체로서 성립이 되면 과거의 사례는 현재의 현실들에 적용할 수 없는 완전한 개체의 것이 되어버린다. 즉 사례는 완전히 다른 상황과 현실 속에서 등장하는 것이기때문에 설령 비슷한 사건들이 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완벽히 같은 사건은 될 수가 없고 따라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또다른 답을 내놓고 있었는데, 그것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다. 현재 우리는 끊임없는 시간의 연속 속에서 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와 과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히 과거와는 다른 시간들 속에 살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과거와의 비교를 통해서 얼마나 다른가 하는 특징을 알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과거와 완전히 다른 현재의 모습을 비교라는 방법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중세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신 중심적인 세계였는가를 알면서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자본중심적인(이른바 먹고 사는 문제에 천착하는) 세계인가를 알게 된다는 거였다.
놀라운 이야기였고, 굉장히 설득력있는 것이었다.
그는 거기에 더 나아가서 우리와 완전히 다른 세계로서의 과거를 성립하게 되면 더 나아가서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서의 미래를 성립할 수 있다고 까지 이야기했다. 즉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의 극복이었다. 굉장히 놀라운 이야기였고, 진보적이었다.
이번 학기들어서 가장 놀라운 말이었고, 가장 인상깊었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