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 김영수, 『추악한 중국인』, 창해, 2005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이 책이 한 300페이지 정도가 되는데 그 내용은 단 하나다. ‘중국인은 추악하다.’ 이 한 줄에 이 책은 다 요약될 수 있다. 그는 중국의 모든 것에 대해 전 방위적인 비판을 퍼붓고 있다. 정치, 중국인, 역사, 풍습, 정신, 교육, 군사, 경제 등등 너무나도 광범위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너무 많은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까. 그는 글을 조금 두서없이 적어놓았다. 그래서 정리하기가 조금 힘들긴 했다.
보양은 중국인을 마치 거대한 장독 속에 갇혀서 썩어가는 구더기와 같다고 하였다. 장독 속에 갇혀서 다른 것과 교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썩어져 악취를 풍기며 더 큰 세상을 보지 못하고, 더 깊게 사고하지 못한다고 봤다. 그리고 그 안으로 매우 싱싱하고 좋은 것들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 안에서 썩기 때문에 그 좋은 모습을 잃게 되고 장독 안에 있던 것들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고 얘기한다. 중국은 5000년이나 된 나라이다. 그리고 면적도 굉장히 넓고 사람도 많은 대국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장독 속에 갇혀서 썩어가게 된 것일까? 그 큰 대국으로서의 면모를 왜 잃게 된 것일까?
중국인들은 체면을 중요시한다. 왜냐하면 복장의 차이 혹은 직업의 차이 때문에 차별적인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집은 5평 단칸방이라도 차가 벤츠라면 그 사람은 대접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더 나은 대접을 받기위한 위선과 허세가 판을 친다. 체면이 중요시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금만 칭찬을 받아도 엄청 좋아하고 우쭐해한다. 그리고 그 체면들 때문에 조금만 비판을 받아도 그것을 수긍하지 못한다. 크고 깊은 생각으로 그것들을 인정하고 개선하려고 들지 않고 끝까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싸움도 많이 하고 어딜 가든 목소리가 크다.
비판을 좋아하지 않고 잘못을 고치지 않으려고 하는 데에는 체면도 있지만 굉장히 보수적인 유학의 영향도 크다. 유학은 2000년가량 중국을 지배해온 학문이었고, 이것은 매우 보수적인 학문이었다. 유학자들은 과거의 제례를 모범으로 삼아 도입하였고 자기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것을 혁신하거나 개혁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것은 옛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대중들에게 주입시켰는데 좀 더 근본적인 변화 혹은 개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학을 토대로 신분제 사회가 성사되는데, 이것을 통해 모든 대중은 존엄한 인권을 가진 개체가 되지 못하고 신분에 따라 귀하고 천한게 나뉘게 되었다. 신분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우하고 평가하다보니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과 자기의 체면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몇 백 년 동안 계속된 관료시험인 과거제도는 모든 인재들을 유학공부에만 매달리게 함으로서 다른 학문이 조화롭게 발전하는 것을 막았다. 유학이라는 큰 장독 안에서 중국인들은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또 장독 안에서도 전란이 매우 잦아 혼란스러운 상황이 있었고 그에 따라 이기주의가 굉장히 팽배해졌다고 주장한다. 나라의 엘리트라 하더라도 그들의 관직은 나라가 준 것도 아니고 백성이 준 것도 아니었다. 바로 또 다른 엘리트들과의 관계가 준 것이었는데, 그러므로 그 관계에만 충실할 뿐 나라와 백성에겐 무관심했다. 나라나 백성을 향한 대의도 없기 때문에 그네들은 오로지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결코 희생하거나 양보할 줄 몰랐다. 조그마한 자기의 이익을 양보한다 해도 그것은 바보취급 받는 것이었고, 아주 조그마한 것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은 단결이 되지 않았다. 장독 속에서 썩어가는 구더기이면서도 그 안에서 단결을 하지 못하고 내분이 일어나니까 그네들의 악취는 더 심해지고 장독을 부수고 나올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보양은 중국인들이 단결해서 그 장독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장독을 깨고 나와서 더 큰 세상 속에서 허례허식인 체면을 강조할 게 아니라 진정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인정하고 그것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독 안에 고인 물처럼 썩어서 사라질 것이 아니라 대국으로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서 중국이 우뚝 서기를 주문한다.
그는 중국이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중국에게 큰 충격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아마 그 뜻에서 이렇게 충격적인 책을 썼을 것이다. 나는 문화대혁명이나 대약진운동 같은 중국인민들에게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왔었을 그런 정책들을 만약에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이 조금만 더 신중하게 도입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만약 그네들이 자기만의 사회주의가 최고인양 생각하지 않고 소련의 사례나 유고의 사례들에서 배웠다면 그네들은 그런 엄청난 정책적 실패는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중국이 거대한 고인 물이 되어 썩어가고 있다는 보양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중국사람들이 생각했던, 내 것이 최고라는 생각은 넓게 흘러가던 물을 고이게 만들고 또 그 물을 썩게 만들었던 것이다. 보양이 이 책에 쓴 말 한마디 한마디는 중국인들에게 쉽게 넘길 수 없는 가시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픔들이 지금을 이겨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면, 그 아픔은 행복한 아픔이 아닐까. 보양은 지금을 사는 중국인들에게 행복한 아픔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