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97호』를 보다가 산악인 故 고미영씨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얼마전에 낭가파르바트에서 목숨을 잃은 故 고미영씨에 대한 이야기와 세계최초 여성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라는 타이틀때문에 요즘 여성산악인들이 선의의 '과속경쟁'을 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세계최초라는 타이틀을 놓고, 지금은 고인이 된 고미영씨 뿐만 아니라 오은선씨, 겔린데 칼텐부르너씨 등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거였다. 근데 그 기사 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낭가파르바트에서 추락사한 고미영씨도 엄씨와 비슷한 그리움에 이끌린 듯하다. 그는 생전에 "(히말라야) 산에 가 있으면 엄마의 품속 같다. 거기에 안겨 있으면 떠나고 싶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고 싶다." 라고 말했다.
-『시사IN 97호』 p.65 기사에서 발췌
이 기사를 읽고 영화 『그랑블루』의 주인공 자크가 생각났다. 영화 속에서 자크는 자기의 연인인 로잔나 아퀘트에게 이런 말을 한다.
가장 힘든 건 바다 밑에 있을 때야.
왜냐하면 다시 올라와야할 이유를 찾아야 하거든.
항상 그걸 찾는게 너무 어려워.
- 영화 『그랑블루』 자크 대사 중에서
자크는 세계기록을 가지고 있는 잠수부인데, 자기의 어릴적 친구였던 장 르노하고 선의의 경쟁을 한다. 그러다가 장 르노는 과도한 기록욕심으로 그만 세상을 떠나버리고, 혼자 남은 자크는 결국 바다를 잊지 못하고 다시 심연 속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랑블루의 이야기인데. 왠지 고미영씨의 기사를 보니 자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고인은 말이 없다. 하지만 진짜 드는 생각은 산에 오르는 것을 그렇게도 편안하게 생각했던 그녀에게 기록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다. 산을 잘 모르고 바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세계최초, 그리고 숫자로 남는 기록이 중요한 것이지, 그냥 아무 이유없이 산을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기록은 단지 숫자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은 아닐까.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 살면서, 어느 순간 모든 것에 숫자적 가치를 메기는 것에 익숙해져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 것의 가치는 단순한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인데, 그렇게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조차 숫자로 표현해버리다가 진정한 가치를 놓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 기사 보러 가기 : ‘세계 최초’보다 더 소중한 ‘목숨’ /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