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정전. 매우 놀라운 영화였다. 90년도에 나온 장국영, 유덕화 주연에 왕가위 감독이 감독을 맡은 영화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에 대한 유일한 정보는 장국영이 나온다는 거였다. 장국영이 내가 고3때 만우절날 죽고, 내가 몇일 후에 이 영화를 다운받아서 봤다. TV에 흔히 나오는 장국영의 맘보춤 장면. 이 장면이 나온다는 영화라는 정보만 가지고 이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나서 네이버 영화 사이트에 가서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았다. 영화해설을 보니, 흥행에는 참패한 영화라고 한다. 나는 매우 재밌었는데, 이게 왜 참패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90년도면, 홍콩에서 한참 도박, 마피아 영화가 성행했을때 였나? 확실히 영웅본색, 도신 류의 영화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그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는 영화다. 하지만, 그냥 아무런 기대감없이 선입견없이 본다면 무척 잘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이 아비정전이다.
이 영화는 '아비'라는 인물에 큰 중심축을 두고 있다. 그는 전형적인 동네 양아치다. 결혼을 요구하는 여자친구를 버리고 그 날 밤에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는 전형적인 기생오라비 양아치다. 자기 어머니와 연애 하는 사람을 가서 패버리기도 하고, 돈 주고 여권을 사기로 해놓고 나중에 폭력을 써서 그냥 여권을 빼앗는다.
그는 자기가 다리가 없는 새라고 한다. 다리가 없는 새는 잠시도 쉴 새가 없다. 항상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이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그에겐 이 세상은 구속이 전혀 없는 너무나도 자유로운 세상인 것이다. 그 다리가 없는 새가 딱 한순간 땅에 내려오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바로 그 새가 죽는 순간이라고 한다. 아비는 자기가 다리가 없는 새라고 한다.
그 대립축에 유덕화가 있다. 그는 경찰이다. 그는 선원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편찮으신 관계로 자기가 보살펴야 하기 때문에 경찰이 된다. 그는 처음 본 여자에게 자기가 지금 가진 돈 전부를 빌려주기도 하는 착한 남자이다. 그는 길거리에서 버려져 있는 아비를 구해준다. 역시나 착한 남자다. 그 구해준 계기로 인해, 아비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다.
죽을 때까지 날아다니던 새가 한마리 있었다.
하지만 새는 어느 곳에도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새는 처음부터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아비는 마지막 죽는 순간에 유덕화를 앞에 두고 회고한다. 자기는 애초에 죽은 새였다고. 자기는 언제나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어느 곳에나 갈 수 있는 다리가 없는 새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아무곳에도 간 곳은 없는 죽은 새였다고. 방황하는 하나의 청춘에 불과했다고 고백한다. 방황하는 청춘은 죽은 청춘이라고. 감독은 우리에게 말한다.
나는 방황하는 청춘인가? 내 다이어리 맨 앞에 스물하나, 스물하나의 무게갖기라고 내가 적어두었다. 작년에 나는 어쩌면 다리가 없는 새를 동경했던 거 같다. 고3때 이 영화를 처음보고 느낀 점은 아 장국영이 더럽게 멋있네 하는 거였다. 상점에 가서 상점알바하는 여성분을 시계 하나로 꼬시는 장면, 귀걸이로 여성분 꼬시는 장면. 정말 더럽게 멋있었다.
대학교에 와서 일년이 지났다. 어쩌다 문득 내가 이루어놓은 것이 뭐가 있는가 생각해보았다. 일년이라는 아까운 청춘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거 같았다. 내가 붕떠있는 풍선.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고 툭 건드리기만 해도 풍선같은 존재가 나인거 같았다. 그래서 난 스물하나의 무게를 갖자고 안타까운 청춘을 낭비하지 말자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을 거는 거였다.
그런 다짐이 요즘 약간씩 흔들리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비와 같은 생이 편하긴 편하다. 자유롭게 날아다닌 다는 거 마지막 쉬는 순간이 죽는 순간이라는 말. 멋있다. 하지만 그런 새는 없다. 있다면 이미 죽은 새의 공허한 망상일 뿐. 요즘 장국영이 장만옥을 시계 하나로 꼬시는 장면이 너무 보고 싶어서 이 영화를 봤는데, 보고 나서 좀 느끼는 점이 있는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