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키리에의 노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울의 봄을 보고 나오는데, 너무 슬펐다. 늘 생각해왔던 것을 또 확인했기 때문이다. 늘 그래왔듯 항상 정직한 놈은 너무 빨리 죽고 나쁜 놈은 천수를 누린다.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인파이터 두 명이 마주 붙어서 강렬한 스트레이트를 어마어마하게 주고 받는 복싱게임을 본 것 같았다. 그 밀도와 속도감이 인상적이었다.
어딘가에 끄적인 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정리를 하긴 해야 하는데 도저히 엮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늘 그래왔듯 전북특별자치도의 전주비빔밥 정신으로 한번 버무려 보려고 하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더빙판(90년대 흥행한 만화인 슬램덩크의 신극장판)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추세라 도저히 후속작이 안나올 것 같은 것의 후속작이 나오고 있다. 2016년에 누군가가 2023년쯤에 NC다이노스의 클린업이 손아섭-박민우-박건우라고 말을 했다면 나는 웃기고 있네라고 비웃었을 것인데 그만큼 충격적인 슬램덩크의 신작이 극장에서 상영되었다.
송태섭이 낚시를 나가는 형과 간단한 작별인사를 할 때부터 난 이미 울고 있었다. 이후 그 극장에서 나올 때까지 한 3번 정도는 더 울었던 듯 싶다. 나의 대학 1학년 시절에 과방에서 소주를 까먹고 있었는데 마땅한 안주가 없었을 때가 있었다. 생라면이 있었다면 그것을 안주삼아 소주를 깠겠지만 생라면도 없었고 과방에는 커피믹스 서너개가 있었다. 그 커피믹스를 까서 커피가루를 입에 녹이면서 소주를 까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슬램덩크를 보고 나오면서 그 생각이 났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인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굉장히 도전적인 영화였다. 우리가 흔히 영화를 감상할 때 느껴지는 줄거리의 흐름이라 할 수 있는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구성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마치 우리의 인생같은 영화라고 느껴졌다. 우리의 인생에 기승전결이 있을까. 어느 시절만 잘라낸다면 기승전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 인생은 그렇지 않다. 어느 순간 우리는 결을 지었지만 그와 동시에 또 다른 기는 시작된다. 그러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승과 전이 진행되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내리치던 그 천안논산고속도로에서의 주저하고 있던 나는 그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를 알 수 있었을까?
우리는 수많은 선택과 거기에 따른 결과로 이어지는 삶을 살고 있는데 거기에는 어떤 기승전결이라고 볼만한 것이 있는걸까. 이야기의 본질은 결국 우리의 실제 삶이라고 하는데 실제 삶에는 기승전결이라는 것이 없다. 따라서 모든 이야기는 실제 삶이 아닌 각색된 삶이라는 것인데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감독이 각색되지 않은 날 것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고 또 앞으로도 만날 것이다. 굶주린 '새'끼, 베푸는 '새'끼,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는 '새'끼, 이유없이 나를 좋아하는 '새'끼. 내가 때로는 굶주린 '새'끼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베푸는 '새'끼가 될 수도 있다. 또 어떤 때는 누군가를 이유도 없이 미워해왔을 것이고 누군가를 이유도 없이 좋아해왔을 것이다. 그런 관계들 속에서 똑같은 공간이라고 할 지라도 어떨 때는 천국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연애할 때 찾은 뼈해장국집과 이별하고 난 이후에 찾은 뼈해장국집의 감성이 다른 것처럼 그것은 너무 다른 감상이라 다른 공간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은 같은 공간일수도 있을 것이다.
제목은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물어보는 것 같지만 실은 물어보기 보다 그냥 감독이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어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편지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적는 것이다. 이 영화는 80대의 어떤 노인이 그렇게 적은 편지를 읽는 느낌이었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이와이 슌지의 신작인 키리에의 노래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정교한 매뉴얼을 갖춘 일본의 관료제를 부러워하지만 정작 일본에 사는 사람들은 거기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매뉴얼에만 충실해서 대피장소에서 기다리고만 있는 모습, 젊은 청춘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데 경찰이 매뉴얼을 내세우며 막으려하는 모습들에서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야외공연 장소의 사전승인을 받았으나 현장에서 사전승인 허가증을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행사를 금지한다.) 감독은 그것이 일본 특유의 경직된 사회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을 넘어 어떤 족쇄같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 같았다. 일본을 넘으려는 키리에의 노래가 눈물겨웠다. 젊은 이들이 모이고 노래하고 행복하기를.
꽃다발같은 사랑을 했다 이후 가장 인상적인 일본의 실사영화였다. (올해 최고의 영화는 슬램덩크 극장판이다.) 키리에의 노래 디렉터스컷에서는 키리에(아이나 디엔드 역)와 잇코(히로세 스즈 역)가 우정의 선을 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하는데 디렉터스컷은 안보는 것으로...
그나저나 쿠로키 하루는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인 것 같은데 맨날 하는 역할이 비슷하다. 립반윙클 때도 그렇고 나기의 휴식 때도 그랬지만 너무 얌전하고 수동적인 여성만 연기하는 것 같다. 그 와꾸를 뛰어넘어서 더 날 것의 호전적이고 전위적인 연기를 보고 싶다.
그나저나 거미집은 꽤 재밌게 봤는데 도대체 왜 흥행이 안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