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코스모스란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만약 이 우주공간에 지적생명체가 인류뿐이라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지 모른다. 내가 만약 조물주라면 좀 더 효율적인 선택을 했을 지도 모른다. 태양계에는 인류를, 그 너머 또다른 행성계에는 ET 외계인을, 그 너머 또다른 행성계에는 타노스 외계인을 만들어놓는 것이 공간의 활용적인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를 만든 조물주께서는 그렇게 효율적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효율성을 따지는 존재가 우리를 만들었다면 우리가 잠든 시간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냥 피로물질이라는 것을 만들지 않아서 잠이라는 게 필요없게 만들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물리학적으로 젖산이라는 피로물질이 분비가 되어서 그것을 해소할만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내가 잠든 시간동안 영혼을 분리해서 또다른 세계에 있는 존재가 그것을 사용하게끔 하는게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잠든 8시간마저도 지극히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 놓지 않았다. 조물주는 그렇게 효율성을 바라고 우주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 말인 즉슨, 그 조물주의 의도대로 설계된 우리는 그렇게 효율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진보진영에서 오래전부터 이야기 되어온 것은, 왜 가난한 계층이 기득권인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른바 계급배반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설명할려면 역설적으로 왜 일부 부유한 계층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부터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급배반투표임은 둘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정당은 이상하리만치 가난한 계층의 계급배반투표에는 주목하지만 부유한 계층의 계급배반투표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의 진보진영이 이상하리만큼 선과 악의 이분법에 기초한 도덕주의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상으로는 진보진영은 선이기 때문에 부유한 계층의 계급배반투표는 인간의 이타성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가난한 계층의 계급배반투표는 보수진영이라는 악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이타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서 왜 강남좌파가 발생하는 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왜 가난한 사람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당연하게도 강남좌파가 탄생한 배경에 인간의 이타성이 있다면 가난한 계층의 보수정당 지지에도 인간의 이타성이 있다.
나는 문재인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재명도 좋아한다. 누군가는 1번도 싫고, 2번도 싫다고 말하지만 나는 1번이 좋았다. 누가 되든 내 인생이 달라졌던가 라는 자조적인 문장은 내가 괜찮다고 포장하기 위한 문장이다. 사실 나는 괜찮지 않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이 진 것도 아니요, 이재명이 진 것도 아니다. 지난 국회의원총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던 시민이 진 것도 아니고,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던 시민이 진 것도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내부의 강남좌파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