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생명의 삶 구절이 사사기 말씀인데 QT를 하다보면 이따금씩 놀랄때가 있다. 도대체 이게 뭘 잘못한 걸까. 한참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서 해설을 보면 아 이런게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인 것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만큼 내가 성경에서 말하는 죄에 많이 익숙해져 있구나 하고 다시 깨닫게 된다.
어제 말씀에는 단 지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단 지파에 대해 더 찾아봤다. 단 지파는 12지파 중 가장 전투에 능한 종족이였고, 삼손도 단 지파소속이었다고 한다. 농업과 수렵, 약탈이 주 생산수단이였던 고대에 단 지파는 요즘으로 치면 매우 능력있는 종족들이였을 것이다. 미가(자세히 설명은 안나오지만 그 시대에 집에 우상과 제단을 세울 정도면 결코 가난한 사람은 아니였을 것이다. 꽤 지방의 세력자였을 것이다.)의 우상을 강탈해가는데 미가가 달려가서 그들에게 돌려달라 하지만 단 지파가 하는 말 한마디에 데꿀멍하고 다시 돌아온다. 사회생활을 하면 알겠지만 단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침묵시킬 수 있는 권력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 지파는 평화롭게 살던 라이스라는 성읍을 공격하여 그것을 자기의 땅으로 삼는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며 자기가 살고 싶은대로 살아간다. 그럼 단 지파는 어떻게 되었을까. 난 그게 궁금해서 더 찾아봤다. 단 지파는 그로부터 무려 400년간 더 번성한다. 이른바 능력있는 종족이었던 만큼 더 번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12지파에서 단 지파는 그 이름이 지워진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이른바 성문법에는 저촉이 되지 않는 일이지만 성경에서 하지마라고 하는 패악한 짓을 저지른다고 해서 그 무리들이 바로 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단 지파가 무려 400년간 더 번성한 것처럼 오히려 더 잘나간다. 왜냐하면 시대가 원하는 것을 가장 최적화한 형태로 구현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잘못을 감추고 남의 잘못은 지적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같은 교회다니는 사람이 그런 것을 잘 할 수 있겠나. (예수는 간음한 여자를 돌로 쳐죽이려는 마을사람들에게, 죄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끊임없이 더 좋은 자리를 찾아 이직하는 것이 맞는 걸까? 정규직이라면 모르겠다. 계약직이라면 그 기간이 길지도 않을 뿐더러, 계약을 맺으면서 그 계약이 끝날때까지는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회사와의 약속인데 그 약속을 깨면서 더 좋은 자리를 찾아 이직하는 것이 맞는 걸까? 어떤 사립대학교는 도서관 사서에게 기록관리대학원 학비를 지원하면서 기록물관리전문요원 자격증을 취득하는 걸 도와줬고 기록물관리전문요원 자격증을 취득한 그 사서는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했다고 한다. (그 사서의 스펙은 사서 + 기록물관리전문요원 + 유관경력) 이것이 과연 기독교인이 해야할 일이 맞는걸까? 어떤 자기계발 유튜버는 그것이 나태하고 능력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과연 그게 맞는걸까?
어쩌면 하나님은 단 지파가 다시 돌아오기를 400년이나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 살더라도 자기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으며 심지어는 사회적으로도 매우 잘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죄의 자식이였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믿지 않는 친구들을 전도할 때 이따금씩 이런 말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고, 죽기전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 돌아가겠다고 말이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구원해주는 자비로운 하나님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그 답을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하나님은 너를 그 순간에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정말 마지막 순간이 왔을때 너는 그 선택을 결코 하지 못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