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특성상 TMI가 넘쳐납니다.
1. 11년만에
제주도를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 간 것은 2004년의 일이었다. 당시 다니던 대학교의 학과에서 역사기행의 형태로 제주도를 갔었다. (이 블로그에도 잘 찾아보면 당시 흔적이...) 당시까지만 해도 제주 4.3사건은 한국정부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 사건이었다. 수많은 희생자와 유족의 증언이 있었고 당시 주민들이 피신해서 살았던 다랑쉬굴 같은 것들이 발굴되고 있었지만 한국정부는 제주 4.3사건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때는 몸이 꽤 슬림한 편이라 당시 제주도민들이 피신해 있었던 굴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들어갈때는 어떻게 들어갔지만 나올때 몸이 끼어서 상당히 힘들게 나왔던 기억이 있다. 한국정부가 제주 4.3사건을 인정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나 2007년의 일이었다.
두번째로 제주도를 방문했을때는 2008년이었다. 역시나 대학교의 학과에서 간 것으로 자전거로 제주도 해안도로를 일주하는 여행이었다. 딱 한번 중산간 도로를 지나갈때가 있었는데, 그때 4.3평화공원을 한참 짓고 있었다. 바깥 골격만 어느정도 완성되어 있었는데, 짓고 있는 모습을 뒤로 하고 엄청난 내리막길로 제주시로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나 4.3평화공원을 마침내 방문하게 되었다. 대부분 알고있는 내용들이라 전시관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시대의 흐름이 감사했다. 15년 전만해도 한국정부에게 4.3사건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멋진 기념관을 남기고 있었다. 진보나 보수를 떠나서 경찰이 재판없이 시민을 죽였다면, 그건 그것대로 잘못된 일이 아닐까.
4.3사건으로 희생된 무고한 시민들의 넋을 기립니다.
2. 사람은 한번에 훅갈수도 있다.
날씨가 너무 더웠다. 서귀포 근처에 돈네코라는 계곡이 있는데, 물이 차가웠다. 그래서 흥분했나보다. 물이 허리 언저리 정도로 차올랐다.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마치 목욕탕에서 냉수탕에 뛰어들듯이 몸을 날렸다. 한 2초정도 물속으로 흘러들어갔을까. 발이 계곡 바닥에 닿지 않았다. 당황해서 허우적대는 사이에, 물이 입속으로 들어왔다. 2번정도 물속에 빠졌다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을때 이러다가 죽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려주세요~ 라고 외치려고 했다. 근데 입안에 이미 물이 가득해서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시 3번째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냈다. P목사님과 S형이었다. 간신히 물밖으로 나왔을때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자꾸 트림이 나왔다. 뱃속에서 계곡 물이 소화가 잘 되었던 모양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사람이 한방에 훅갈수도 있구나 하고 실감했던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에 선교사님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선교사님이 말씀하시길,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이 죽는다는 말씀을 하셨다.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히보니, 지구 어딘가까지 갈 필요도 없어보였다. 수원에서 차로 2시간 걸리는 북한에만 가도 성경책 가지고 있다고 죽은 사람들이 있지 아니한가. 나는 참 쉬운 신앙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러가지로 감사의 빚이 많다. 나의 삶을 살아내면서 갚아야할 소중한 자산들이다.
3. 끝까지 예배하라, 끝까지 온유하라
제주도에 머무는 기간동안 계속해서 떠오른 말씀은 온유에 대한 말씀이었다. 부산에서 떠나올 때였다. 호산나 교회에서의 마지막 예배였다. 유진소 목사님이 항상 온유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기독교는 절대 투쟁하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데모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 설교를 들으면서 아주 강하게 그 말씀이 나의 머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슈퍼스타였다. 가는 곳마다 수많은 군중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몰려들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때면 그와 함께하기 위해 구름떼와 같은 군중들이 그와 같이 이동했다.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셨으면서 그가 마지막에 한 것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일이었다. 식민지 이스라엘을 위해 애국독립투사가 되신 것도 아니었고 무산계급 독재를 위해 프롤레탈리아 혁명을 하신 것도 아니었다. 단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인류 역사상 예수님만한 권력, 돈, 명예를 얻어놓고 그렇게 세상을 떠난 사람은 1명도 없다. 에이 지구상에 한명 정도는 있겠지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주먹만한 권력을 가지고도 타락하는 존재들이다. 제주도에 있으면서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제주도를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내가 삶을 살아낸다면, 그것만큼 성공한 인생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