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원고는 드림 11호에 미처 실리지 못했던 원고입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죄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사람이라도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되지 않는한 그 사람을 죄인으로 취급하여서는 안된다는 원칙입니다. 나는 죄를 전혀 저지르지 않았지만 누군가 나를 해할 목적으로 검찰에 고소할 수 있고 그를 통해서 나는 수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을 죄인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되고 죄인이라고 의심받을 수 있는 자료를 유포하여서도 안 됩니다. 이건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뇌물수수혐의로 기소된 한 전직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 전직 대통령은 검찰에서 수사를 받았는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사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유포되었습니다. 그 나라의 언론들은 그 정보를 받아서 사실확인을 하기보다는 단순보도를 하는데에 그쳤습니다. 그래서 그 전직 대통령은 아직 재판에서 유죄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죄인이 된 것인 마냥 여론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전직 대통령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됩니다.
이 과정에서 공인으로서의 역할보다 앞서는 한 시민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인권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나라는 세계 13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이자 G20회의를 개최한 높은 국격을 가진 나라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OECD 34개국 가운데서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이자 세계에서 언론이 70번째로 자유로운 나라입니다.
국회의원이 잘못하면 검찰이 수사를 하고, 대통령이 잘못하면 검찰이 수사를 합니다. 그런데 검찰이 잘못하면 누가 검찰을 수사할까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검찰이 잘못하면 검찰이 수사를 합니다. 그러니 검찰이 잘못한 대형스캔들은 여태껏 터진 적이 없는겁니다. 검찰이 무슨 신입니까? 검찰도 사람인 이상 잘못은 하게 되어있고 실수도 하게 되어있습니다. 국회의원도 대형스캔들이 터지고 대통령도 대형스캔들이 터집니다. 왜 검찰만은 대형스캔들이 터지지 않고 있는 걸까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그 누구에게도 기소 당하지 않는 절대권력을 가진 검찰은 그만큼 절대적으로 부패할 가능성도 큽니다.
사법부와 검찰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2010년에 개봉한 '부당거래'와 2012년에 개봉한 '부러진 화살'입니다.
영화 '부당거래'는 검찰과 경찰이 등장하여서 어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판타지적입니다. 경찰은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범인을 만들어냅니다. 검찰은 스폰서를 받은 회장을 지켜주기 위해서 경찰의 꽁무니를 캐기 시작하고 그렇게 경찰과 검찰은 서로의 부당거래를 성공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씁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의 권리와 인권은 당연히 무시되구요.
영화 부당거래를 보면서 그 무엇보다도 불쾌했던 사실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너무나도 판타지적인 이야기들이 아 저런 일들이 실제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몰라 하고 자각하는 순간이였습니다. 또 그것이 우리의 인식 속에 너무나도 당연시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악이 일상이 되어버려서 악인지 인식도 못하게끔 되어있는 상태임을 깨달은 겁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너무나도 불쾌하고 또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더 서글펐던 것은 우리가 그것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부재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습니다.
부패한 검찰은 같은 조직인 검찰이 수사합니다. 법정에도 검찰만 세울 수 있습니다. 중이 제 머리 깎는 식입니다. 자기가 자기 머리를 자르는데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사건 하나 터지면 몇 명 옷 벗기면 그만이고 그마저도 좀 잠잠해지면 유야무야 사건 종결시키면 그만입니다. 옷 벗은 몇 명은 변호사 개업하면 되고 이렇게 변호사가 되더라도 전관예우로 첫 소송은 무조건 이기게끔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검찰의 현실입니다. 지금 검찰은 구조적으로 심각한 결함이 있으며 이것은 조속히 강한 의지를 가지고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이 부당거래의 연장선상에서 얼마전에 개봉한 영화가 바로 부러진 화살입니다.
부러진 화살은 한 교수가 판사를 위협하고 그로 인해 발사된 화살로 인해서 벌어지는 재판과정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 재판과정을 보면 관객으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피고인이 계속해서 요구하는 혈흔감정이나 부러진 화살을 보여달라는 요구에 사법부가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 등입니다.
여기에서 관객들은 사법부가 얼마나 오만한 곳인지,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가면서 국민의 하나인 피고인의 권리요청에 얼마나 오만하게 대응하는 곳인지 깨닫게 됩니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해서 사법부는 상업적 흥행을 노린 허구적 상상이 가미되었다고 논평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허구논란을 떠나서 이 영화가 국민들에게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고 또 흥행을 한다는 것은 국민이 사법부의 부조리를 파헤친 이 영화에 공감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흥행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만 가능한 것이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이라크 내의 시아파와 수니파와의 갈등을 다룬 영화를 국내에서 개봉한다면 그 영화는 흥행할 수 있을까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기를 원합니다. 부러진 화살이 이만큼 흥행할 수 있는 것은 대중들의 머리 속에 그만큼 사법부가 부조리하고 썩어있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법부와 검찰, 이 두 집단은 너무나도 긴 시간동안 국민들에게 문제가 있는 곳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사람을 바꾸어봤고 규칙을 바꾸어봐도 여전히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구조 자체를 바꿀때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