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레께 부산영화제를 다녀왔다. 친구들 세명이서 남포동 극장가에 아침 10시반에 모여 저녁 11시에 집에 왔으니, 하루종일 남포동 주변 극장가(PIFF 광장)에서 시간을 보낸 셈이다. 아침 10시 반에 모여서는 일단 예매해둔 표를 다 찾았다. 그리고 11시 상영하는 '대결'이라는 영화를 봤다. 이란 전쟁영화였는데, 그냥 전쟁영화로만 승부했다면 괜찮았을 거 같았다. 초반 30분까지는 전쟁으로 재밌는데, 그 이후에는 배신, 사랑, 우정, 복수등의 여러가지 쓸데없는 요소가 들어가 있어서, 극의 진행에 문제가 많아 보였다.
오죽했으면,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인 '대결'이 의미하는 내용이 관객과 감독과의 대결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두시간 10분동안 감독과 치열한 한판 대결을 벌친 기분이였다. 감독도 맘에 안들었다. 와서 무대인사도 하고 싸인도 했다. 어떤 스틸사진에다가 싸인을 해주었는데, 내가 싸인을 받을 차례엔 꽤나 멋있는 사진이였다. 전쟁의 허망함과 삶의 고단함 등 멋진 사진이였는데, 그 사진에 싸인을 하더니, 뒤에 이상한 PIFF 스탭에게 주는 것이었다. (여자 스탭이였는데, 좀 괜찮은 몽타쥬였다.) 쳇, 나는 그 덕분에 이상한 여자 사진 받았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밥을 먹고 피프광장을 돌아다녔다. 확실히 축제분위기였다. 여러가지 부스에서 이벤트가 일어났고, 피프광장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어깨에 이벤트 종이백을 멘채 돌아다녔다. 우리 일당도 2046 부스에서 이쁜 김태희 종이백도 받았고, 씨네21부스에서 이벤트에도 당첨이 돼, 우산도 하나 받았다.
내가 시간을 잘못 알아서 다섯시 상영이 아니라 여덟시 상영이였다. 애들의 불만섞인 목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맥도날드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여덟시까지 [온갖 잡담->분위기 썰렁->미팅얘기->분위기 썰렁->사람 걱정->분위기 활발]등의 패턴을 반복하면서 마침내 여덟시가 되어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러 갈 수 있었다.
아침에 봤던 '대결'과 똑같은 부산극장 1관이였다. 부산극장 1관은 2층까지 있는 꽤 큰 관이었다. 아침에 '대결'은 그 큰 관에 한 오십명정도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모터사이클'은 사람이 꽉꽉 들어찼다. 내 친구가 대영시네마쪽에서 친구랑 같이 있었다고 했는데, 어떤 사람이 '모터사이클 표 한장 팔아요' 하니까 그쪽으로 사람들이 진짜 많이 모였다고 한다. 확실히 영화의 축제, 영화의 바다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또, 평소에 부산에서는 외국인이나, (우리와는 다른 억양을 쓰는)타지역 사람들을 보기 좀 힘들다. 그런데 이번에 남포동갔을때는 경기도 억양의 사람들이 많았고, 게스트, 프레스 등의 카드를 목에 건 외국인들도 많았고, 그냥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는 외국 사람들도 많았다. 확실히 축제였다. 말그대로 축제였다.
영화는 진짜 재밌었다. 아침에 너무 재미없는 영화를 통해, 쓴맛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영화가 더 단맛이였을 수도 있다. 근데, '대결'이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나 똑같은 부산극장 1관에서 상영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모터사이클'은 꽉 찼고, '대결'은 4분의 3 관객석이 비었다. 그리고 '모터사이클' 영화가 끝나자 마자 감독이고 배우고 뭐고 한명도 없었는데도,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일어났다. 근데 '대결'은 감독이 바로 관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았는데, 박수를 쳐야할지 말지 관객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결국 조금 박수를 쳤다.
'모터사이클'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따로 얘기를 하고 싶다. 정말 괜찮은 영화기에 이렇게 부산영화제 경험담에 묻혀가기는 좀 아쉬운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