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스 B. 젠슨, 장화경, 『일본과 세계의 만남』, 소화, 1999
이 책의 제목은 일본과 세계의 만남이지만, 실제 내용은 일본과 서양세계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그에 따라 일본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보여주는데 특히 일본의 외교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외교사를 통해서 일본의 근대화와 산업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잘 설명하고 있었다.
이 책은 원활한 설명을 위해서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시기별로 총 3단계로 나누고 있었다. 제 1단계는 네덜란드상인 등을 통해서 들어온 난학이, 기존에 주된 학문이었던 중국학문에 대한 비판을 통해 중국학문의 권위가 무너지고 서양학문이 옳다고 판단되어 사람들에게 서양학문이 점차 확산되어 가는 시기였다. 제 2단계는 페리제독의 귀항과 미국과의 조약을 통한 통상이 이루어지면서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고 본격적으로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한 시찰단과 해외유학생이 해외로 다녀오면서 일본이 대대적으로 근대화에 성공하였던 시기였다. 제 3단계는 제 1차 세계대전이후를 다룬 시기로,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일본의 새로운 위치를 확립시키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또 패전하고 그리고 그 폐허 속에서 또다시 세계 2위의 경제대국가 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국제정세안에서 일본의 지위와 위치, 그리고 역할을 새롭게 규명하려고 노력했던 시기로 구분짓고 있다.
단순히 시간에 따른 시기의 구분이었지만, 이 구분은 나름 일리가 있는 구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마지막 부분인 20세기 이후의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 이전까지의 시기구분은 분명 적절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일본에 가족위주의 국가주의가 확립되어가는 부분이었다. 메이지유신 이후로 외국을 배우기 위한 시찰단이 서양으로 많이 나갔는데, 그들은 국제관계가 힘을 중요시하는 양육강식의 세계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이 빠른 시간 안에 근대화를 이루어서 강국으로 발전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의 근대화를 빠른 속도로 추진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서양이 민족주의를 통해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성립시켰고 그것을 통해서 강국으로 발전하였음을 간파하였다. 그래서 그것을 일본사회에 접목시키는데, 그 결과로 각 호주를 통한 가족지배를 확대시키고 그 개념을 더욱더 확대시켜 천황위주의 국가주의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기존의 국민들에게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에의 헌신과 봉사를 더 강조하는 신하로서의 국민인 ‘신민’이라는 개념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일본사회의 특징적인 모습인 일본천황과 가족위주의 국가주의가 자체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서양세계를 관찰하면서 일본세계에 등장하게된 것임은 분명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렇게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고, 일본이 근대화과정을 다루고 있는 1, 2단계까지의 서술은 그런대로 매끄럽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러나 3단계에 들어서서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의 이야기들은, 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이 책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책임에 대해서 명확하게 규정짓지 않고, 그 책임을 두루뭉실하게 군부에서 찾고 있다. 그리하여 최종결정권자이자 천황의 전쟁책임회피를 간접적으로 지지하고 있는데, 그 이전시기에 이미 가족중심의 국가주의가 성립되면서 천황을 최고통수권자로서 인정했던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아무리 군부위주로 정세가 돌아갔으며 군부에서 그런 의견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천황이 직접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지적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일본어 안에 타동사보다는 자동사가 많이 쓰인다는 점을 통해, 언어자체가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으로 일본천황의 전쟁책임회피문제를 설득하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일본천황이 전쟁책임을 회피했다는 것을 설명하기에는 좀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패전이후 일본이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부분에서도 이상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일본은 군비에 대해서 많은 투자를 하지 않고도, 세계정상국가가 되었다면서 그 원인을 일본이 주변국가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내 생각엔 일본이 군비에 대한 많은 투자없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이 주변국가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국가들이 일본과의 분쟁에 신경을 쓸 수 없을 만큼 각자 국내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경우에는 대만과의 분쟁이 있었고, 한국의 경우에는 북한과의 분쟁이 있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국력이 일본과 전쟁을 치룰정도로 강력하지 못하였으며, 소련은 일본 쪽보다는 유럽 내의 상황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일동맹은 강력하였고, 미국과의 군사적 협조를 통해서 일본은 군비를 확대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 안보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일본이 가지고 있는, 섬이라는 안보상 유리한 지리적 이점도 간과하고 있었다. 일본과 전쟁해서 승리하려면 대규모 상륙전을 치러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국가도 별로 없었으며 (미국의 경우에도 제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일본본토로 상륙하는 작전을 계획하기도 하였는데, 모의전투결과 미군 300만 명이 희생된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인류 최초로 일본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설령 있다 치더라도 자국문제 혹은 일본문제보다 더 큰 다른 문제들 때문에 일본을 신경 쓰지 못하는 것이었다.
저자가 마지막 부분에서 이상하게 서술한 것은 분명히 아쉬운 대목이었다. 사실 최근의 역사라는 것은 그 이해당사자들이 살아있고 각각의 이해관계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서술하기에 껄끄러운 부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역사가로서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최대한 진실을 전달할 수 있도록 서술하는 용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민감한 부분에 대해 최대한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논란이 되는 부분을 이리저리 피해나가는 것처럼 보여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 책은 분명 실망스럽고 이상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문제가 되는 3단계를 뺀 이전부분의 서술은 합리적이며 바른 서술이라고 생각한다. 동양의 다른 나라들은 근대화에 실패하고 대부분 식민지가 되거나 반식민지가 되는 상황에 빠졌다. 하지만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하여 서양의 여러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일본이 서양세계와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서양세계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일본세계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과정을 잘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