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때였을 거야 아마. 그때 고등학교를 내신으로 갔었는데, 기말고사 끝나니까 고등학교도 정해졌겠다, 수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 그래서 수업시간에 이것저것 영화같은거 되게 많이 봤었는데, 그때 이 원령공주도 처음 보게 되었어. 그때까지만 해도 만화영화는 TV시리즈로만 적합한 거다 정도로밖에 생각하고 이거 봤는데, 웬걸 장난이 아닌 거야. 그때부터 이 감독이 만든 만화는 일부러 찾아서 막 보고 그랬었어.
어쨌든, 오늘 이 영화 무지 오랜만에 봤어. 역시 다시 봐도 재미있더만. 옛날에는 이거 보면서 그렇게 까지 막 생각을 하고 그러진 않았는데 오늘은 무지 생각을 하면서 봤어. 한 세 번째 보니까 옛날에 이런 장면이 있었나 하는 그런 생각도 들고, 나름대로 막 분석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되더라고.
이 영화의 주된 대립은 숲을 사수하려는 도깨비들과 그 숲을 이용하려는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립이야.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코피 터지게 싸우는 거지. 그 한가운데에 바로 주인공 아시타카가 존재하는 거고. (자기가 원해서라기보다는 그 싸움의 희생자로서 어쩔 수 없이 개입하게 되지만.) 아시타카는 이런 피비린내나는 끝도 없는 전투보다는 서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공존하기를 갈망해. 서로의 이념, 이익 이러한 것들도 좋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건 바로 생명이거든.
감독은 바로 그 생명의 소중함을 얘기하고 싶었던 거 같아. 사슴신은 생명을 관장하는 신이야. 숲에 살면서 사슴의 몸통에 원숭이 얼굴을 하고 살아가지. (이 생김새 자체도 공존을 얘기하고 있어. 숲을 상징하는 사슴의 몸통에 인간을 상징하는 원숭이 얼굴. 그것들이 공존하고 있는 형태가 바로 사슴신의 모습이지.)
이 사슴신은 새로운 생명을 부여할 수도 있지만, 생명을 뺏어갈 수도 있는 신이야. 극 중간에 아시타카가 다치는 장면이 있어. 총 맞고 이리들한테 머리 뜯기고 칼 맞고 그런 장면이지. 사슴신은 거의 다 죽은 아시타카에게 새 생명을 부여해줘. 그래서 아시타카는 다시 살아나게 되지. 하지만 극 후반에 가면 숲을 구하기 위해 온 오코토누시 (멧돼지들의 우두머리)와 모로 (이리들의 우두머리)의 생명은 오히려 거두어 버린다고.
생명을 주고 뺐을 때의 그 기준은 바로 생명을 얼마만큼 존중하는가 인거 같아. 아시타카는 그 무엇보다도 생명을 중요시했지만, 오코토누시와 모로는 숲을 지키기 위해 많은 생명을 희생시켰거든. 그래서 사슴신이 그들의 생명을 뺏어 갔을 테고.
극 후반에 나오는 장면 중에 죽은 멧돼지에 깔려서 버둥대고 있는 이리일족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빼내는 장면은 감독이 야심차게 준비한 그런 장면이라고 봐.
나와 이념이 다르고 이익이 다른 적이라 하더라도, 그 모두 다 소중한 하나의 생명이야. 나의 이익, 신념, 이런 것도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그런 것들 보다 더 상위에는 바로 생명이라는 게 존재해.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생명이란 얘기지.
주인공 아시타카를 보면서 누구 닮았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가만히 보니 동방신기의 유노윤호를 많이 닮았어. 미디어에 노출된 거는 아시타카가 시기적으로 앞서니까 유노윤호가 아시타카를 닮은 건가? 어쨌든 둘이 많이 닮아서 아시타카가 혹시 한국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 그냥 생각뿐이지만.
오랜만에 리뷰형식의 글이라 잘 안 써지네. 그래도 워낙 영화가 괜찮아서 쓸 내용이 좀 있는 거 같아. 혹시나 원령공주 안 본 사람 있으면 한번 보길 바래. 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