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디어를 러프하게 정리하는 수준이라 구체적인 예시나 수치는 틀릴 수 있습니다.
안철수가 정치하는 목적인 실패해도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회는 사실 정책이나 문화도 중요하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금리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은행으로부터 1프로대 금리로 대출을 받는 시기와 20프로대 금리로 대출을 받는 시기에서는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기회는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권력은 이미 시장에게로 넘어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시장은 결코 기업을 의미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금리에 달려있다.
저금리 상황과 고금리 상황의 차이가 분명히 있기에 역사를 살펴보면 혁신적인 발명이 일정기간에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그 이후에는 한동안 정체기가 이어지는지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다. 저금리 상황은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기업가들이 나타남을 의미하지만 그와 동시에 시장물가가 올라서 서민들의 삶이 힘들어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기간 저금리 상황으로 인해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가 우후죽순 등장하는 시기가 나타나게 되지만 그 이후에는 또 일정기간 고금리 상황을 견뎌야했기에 그 시기에는 그 전만큼 혁신적인 제품들이 등장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1890년부터 1920년 사이의 기간과, 1990년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을 나는 굉장히 의미있게 생각한다. 1890년부터 1920년 사이에 교류전기, 세탁기, 전기모터, 브라운관, 라디오, 내연기관자동차, 냉장고 등이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엽에 이르는 그 기간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혁신적인 제품들이 등장할 수 있었을까? 역사상 가장 식민지경영이 절정을 이루었던 때가 바로 이 시기다. 역사상 대제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0개 남짓하는 제국이 나머지 모든 세계를 식민지로 경영하는 일은 한번도 없던 일이었다. 아무리 금리를 낮추어도 식민지에서 지속적으로 싼 가격의 물건을 공급할 수 있었고 이것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아서 저금리 저물가의 안정적인 경기상황에서 놀라운 인류의 발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여러모로 1990년부터 지금까지의 기간과 닮아있는 부분이다. 1990년 소련이 붕괴하고 양극체제가 일극체제로 바뀌면서 단일통화, 규제완화, 자유무역의 기조 속에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공장을 설립하고 재화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가능하게 됨에 따라 저렴한 곳에서 재화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공장을 지은 곳의 생산비가 늘어도 언제든지 더 낮은 생산비를 가진 지역으로 이전하여 재화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이키의 OEM 공장은 일본-한국-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를 거쳐 지금은 파키스탄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 흐름속에서 우리는 인터넷, 전자상거래, 스마트폰, 비트코인, 자율주행자동차, 익일배송등과 같은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다.
지난 30년간은 20세기 초반의 식민지세계와 비슷한 상황이었기에 저금리 저물가의 이상적인 경기상황에서 놀라운 기술혁신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근데 문제는 그 시기가 이제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요즘 볼커의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에게 앞으로 생각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어서다. 2000년대 초입 닷컴버블과 911테러, 그리고 그것을 이은 이라크전쟁은 미국정부가 불가피하게 저금리정책을 유지하게 만들었는데 그 결과 발생한 것이 2008년 금융위기였다. 근데 미연준의 대책은 더 금리를 낮춰서 아예 초저금리로 간다는 것이고 그러는 기저에는 저금리를 유지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독특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풀린 돈이 아기걸음으로 서서히 회수되고 있던 2017년부터 금리는 오르고 있었고 2019년부터는 상당부분 경기침체가 관측되기도 했다. 그랬는데 2020년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그 이전까지 회수되던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또다시 대규모로 풀리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의 국제정세는 2008년 금융위기때의 상황과 많이 다르다. 미중무역분쟁과 리쇼어링으로 더이상 저렴한 생산비의 제품들이 사라지는 와중에 막대하게 풀린 돈은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물자의 부족함을 의미한다. 미국내에 물자가 부족해지니 미국은 달러의 가치를 올림으로 인해 세계의 달러를 미국으로 수입하고 인플레이션을 세계에 수출한다. 그러니 벌써 소규모 경제국에는 물자가 수입되지 않아 인심이 흉흉해지고 그러니까 정세가 불안해져 아프리카에서는 벌써 곳곳에서 정변과 내란이 일어나고 있다.
나의 뇌를 풀가동해봐도 이 흐름은 결국 2가지로 귀결된다. 역사적으로 물자가 부족해지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옆동네에 가서 물자를 뺏어오는 방법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서 중국의 대만침공이 유력하게 떠오른다. 폴란드는 영국과 프랑스와 상호방위조약이 맺어져있었다. 그럼에도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한다. 물자가 부족해진 국가의 지도자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한 달 안에 마무리 짓는 전쟁을 상상할 수도 있다. 월드워1은 1914년 식민지 경영의 정점에서 발발한다. 다른 방법은 인플레이션 압박이 서서히 상승해도 옆나라에 침공함으로써 물자를 뺏어올 수 없는 냉전상황이었기에 그 인플레이션을 그대로 다 맞으면서 미연준이 대출금리를 20프로까지 올린 볼커의 70년대이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상당기간 인플레이션을 피할 길이 없다.
2000년대 초반 경남고등학교 2학년 1반에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있었다. 키는 190이 넘었고, 항상 짙은 색의 색이 들어간 안경을 끼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등교했다. 그 아이는 어디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반 아이를 괴롭혔다. 36명의 아이 중에 자기와 같이 다니는 패거리 5명을 빼고 나머지 30명의 아이들은 그 무리들에게 학대를 받았다. 그 패거리가 100의 학대를 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모두 3.3만큼의 학대를 받았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자기가 받고 있던 학대의 양을 다른 아이에 전가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거창한게 아니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다른 아이에게 자기가 받고 있던 학대를 넘기려 했고 그렇게 자기가 받고 있던 3.3의 학대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하다보니 일그러진 영웅으로부터 받는 학대는 여드름이 많이 났고 금색 안경을 낀 아이와 타지에서 전학와서 서울사투리를 쓰던 아이 두 명에게 집중되었다. 그때의 나는 반항심이 있었던지 아니면 의협심이 있었던지 아니면 눈치가 없었던지 그 둘과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나도 같이 그 일그러진 영웅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덕형관 2층에서 안경이 벗겨지고 그 아이에게 뺨을 맞고 있을 때 1층 계단에서 2층으로 올라오던 남자 선생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고 다시 걸음을 돌려 1층으로 내려갔다.
미국이 달러를 수입하고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되어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나의 주식계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20년처럼 막대한 적자를 껴안으면서 지속적인 서비스 개선에 성공한 빅테크 기업들은 이제 안 나온다. 한국의 일부 개신교 목사님들께 감축드린다. 여러분이 그렇게 좋아하는 록펠러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