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쯤이었나. 교회모임에 갔었는데 새가족(교회에서는 새롭게 교회에 나온 분을 새가족이라는 명칭으로 부른다)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 그 분이 비트코인의 미래에 대해 아주 열정적이면서 심각하게 이야기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당시에 개당 몇 만원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단 몇 개만 사놓으라고 강력하게 권유했었던 것 같다. 요즘도 교회에서 비트코인 이야기를 하면 또라이나 도박꾼 취급을 받는데 그 때 당시에는 어땠겠는가. 그 분도 두어번 교회모임에 나오다가 자연스럽게 교회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8,000만원을 넘어섰을 때 그 사람이 떠올랐다. 내 인생에 스쳐지나간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억이 안날뻔도 한데, 기억이 나는 이유는 그때 당시에 내가 꽤나 솔깃하게 반응한다고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느꼈었는지 교회모임에 있었던 다른 사람을 다른 일로 우연히 만났을때 비트코인을 샀냐고 나에게 물어봤기 때문이다. 내가 안샀다고 하니까 으이구 잘했다 하며 대답을 받았던 그 장면이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보면 아버지 쿠퍼가 딸 머피에게 블랙홀 안의 태서랙트에서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내 인생에 그런 장면이 있다면 그 2014년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씩 한다. 아주 먼 과거에 있는 조상이 그 곳에서 비트코인을 사라고 나에게 모스신호를 보내지 않았을까...
서신동에 있는 백화점의 스와치그룹 멀티샵에서 시계를 직접 보고 자꾸 그 자태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시계를 큰 맘 먹고 하나 샀다. 기계식 시계는 5년에 한번씩 오버홀이라는 수리를 해야하는데 대부분의 시계수입회사가 보따리상 수준이기 때문에 100만원 넘어가는 진지한 기계식 시계는 한국직영을 운영하는 스와치그룹말고는 살만한게 없는 것 같다. 심지어 R사도 본사직영 수리점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천만원 넘어가는 기계식 시계를 사는 것이 아니다.
작년 여자농구를 즐겨보게 되면서 하나씩 사모았던 주식이 있다. KB스타즈를 응원했던 터라 KB스타리츠를 조금씩 사모았는데 완전히 떡락했다. 이럴거면 국민은행은 다시 주택은행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위험신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치 한 여름에 축처진 불알과 같은 차트가 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군대에 있을 시절이었다. 군대에서는 저녁점호라는 것을 하는데 내가 전역을 할 때가 되니 분대원들끼리 앉아서 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그 전에는 내무반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일렬로 서서 도미노처럼 하나 둘 번호를 외치며 옆으로 고개를 홱홱 돌리는 형태로 저녁점호를 받았다. 어느 날 그렇게 점호를 받고 있었는데 점호를 받고 있던 경상도 출신의 행정보급관이 이런 말을 했다. 볼살이 두툼하게 올라온 한 병사의 얼굴이 그것과 꽤 닮아있었던 모양이다.
"니는 얼굴이 마치 한 여름에 축~ 처진 불알같노?"
주위에 있던 모든 군인들이 빵터졌지만 분위기상 다 웃을 수는 없었고 억지로 다들 웃음을 참았다. 그 병사는 한동안 별명이 여축불이 되었다. '여름에 축처진 불알'의 줄임말이었다. 여름에 축처진 불알과 같은 차트가 나오면 조심해야 한다. 역시 한국에서 마약과 도박과 주식은 하는 것이 아니다.
기계식 시계에 관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3D프린트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계식 시계도 소재혁명이라고 부를만큼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D프린트 기술이 발전하면서 옛날에는 하나하나 깍아서 가공해야 했던 기계식 시계안에 들어가는 정밀부품을 찍어낼 수 있게 되었고 단순한 철소재가 아니라 다양한 비철금속으로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철소재의 부품보다 더 가벼운데 그에 반해서 강도도 강해서 내구성도 좋고 정밀도도 좋은데다 철소재가 아니라서 자성에서도 강한 기계식 시계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다.
3D프린트가 기계식 시계에 들어가는 소재의 혁명을 가져오고 그것이 기계식 시계의 품질을 올리면서 고가의 기계식 시계가 호황을 맞이하고 그러면서 다시 3D프린트 기술이 발전하는 그런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대량의 기계식 시계무브먼트(시계안에 들어가는 일종의 엔진)를 만드는 회사는 정밀 3D프린트 기술에서 이미 상당한 기술적 성취를 이루고 있어서 앞으로도 상당히 유망할 것 같다. 이를테면 일본의 세이코엡손, 스위스의 스와치그룹 같은 곳이다. 얘네들은 K물적분할도 하지 않는다. 중국도 지금은 저가형시계 제작에 치중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계부품과 시계완제품을 만들어내는 만큼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반면 한국만 그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다.
입체적으로 잘 빚어진 기계식 시계의 다이얼과 핸즈들을 보고 있으면 잘 만들어진 나만의 디오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우리의 시계산업을 보는 시각은 아직도 저가형의 쿼츠패션시계 정도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