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에게서 완전한 사육을 당하고 있다. 매번 산에 올라갈때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뭐하는 새끼이기에 지금 산에 올라가고 있는가 하는 깊은 자괴감에 휩싸이고 한다. 특히 1,600만명에 달하는 나같은 과체중인은 등산길보다 하산길이 더 힘들다. 하산길에서 한발짝 내딛을때마다 내 몸은 내 몸무게 만큼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무릎관절이나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하는 시점이 남들보다 항상 빠르다. 또한 그 무게만큼 반작용도 작용하게 되는데, 한발짝 내딛을때마다 위장에 있어야할 위산이 식도를 감히 넘보고 올라오기도 한다. 위산이 식도를 타고 올라와서 자꾸 헛트름을 하게 될때면 이미 위험 신호가 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같은 과체중인은 등산길보다 하산길에서 더 많은 물을 소비하기 때문에 물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고 물을 무조건 많이 싸갖고 올라가란 이야기는 아니다. 물을 많이 먹으면 그만큼 무게가 더 나가기 때문에 등산길에서 목마르다고 무턱대고 물을 먹었다간 그 물의 무게만큼 하산길에 당신의 몸에 충격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옛날에 소 무게 늘리기위해 강제로 물먹이는 것 하고 비슷하다.) 우리같은 과체중인은 등산길이 하산길보다 비교적 수월할 가능성이 높다. 과체중인이라고 하여도 그게 100% 지방질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기 때문에 평균인, 저체중인보다 근육량은 더 많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산길은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에 이때 물을 충분히 아껴두었다가 하산길에서 자꾸 위산이 식도를 타고 넘어올때 그때 안정제로 적절히 투입해주면 된다.
당연히 커피나 탄산은 절대 안된다. 그런거 잘못먹으면 가져간 물을 다 소비해버렸는데 아직 하산길이 한참 남은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등산을 하다가 힘이 들면 탄산이 들어가지 않은 비타민제가 큰 효과가 있다. 대다수 드링크 비타민은 당분이 강하게 들어가 있어서 몸마름이 더 심해지는 것 같고 당분이 없는 드링크제를 못찾겠으면 차라리 레모나 같은 가루형 비타민제가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아 그리고 등산하기 20분 전쯤에 이온음료를 먹어두면 전해질이 미리 보충이 되어 있어서 꽤 효과적인 것 같다.
이런 힘겨움을 등산을 하다보면 항상 겪게 된다. 그럼에도 내려오면 다시 산에 올라갈 계획을 잡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나는 산에게서 완전한 사육을 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최근에 지리산을 올라갔었는데, 사실 지리산은 올라갈 생각이 없었다. 아마 덕유산이 이번 시즌에 가장 높은 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덕유산에 올라가보니까 생각보다 많이 높았다. 1,614m였는데, 그동안 스킬이 좀 붙었는지 생각보다 할 만했다. 아 여기서 300m만 더 올라가면 지리산 정상인데 싶어서 지리산에 갔다. 물론 고생은 뒤지게 했고 지금도 휴유증이 남아있지만 다시 등산할 생각을 조금씩 하는 걸보니 완전한 사육이란 것이 이렇게 무섭다.
덕유산도 산세가 굉장히 넓기 때문에 여러가지 출발점이 있지만 나는 무주구천동 탐방센터에서 출발했다. 첫번째 등산에서 실패한 이유가 등산로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무주구천동에 가서 현장에서 지도를 보고 올라가다보니 최단코스를 가게 되고 그것이 짧지만 가파른 헬코스(구천동-칠봉-향적봉)였던 것이다. 이후 조사하면서 알게된 것이지만 덕유산에는 무주리조트 곤돌라를 통해 손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그렇기에 등산길이 다소 긴 코스(구천동-백련사-향적봉)로 이루어져 있어도 하산길은 무주리조트 곤돌라를 통해 하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등산하는 경우가 많다. (무주리조트에서 무주구천동까지 오는 셔틀버스가 있다.) 하산길이 힘든 1,600만 과체중인에게 덕유산은 아마 가장 적절한 산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무식하게 다 걸어서 내려왔다.
저번 시즌의 가장 높은 산은 한라산이였고, 이번 시즌의 가장 높은 산은 지리산이었다. 이제 높은 산은 어느정도 가봤으니 이번 시즌은 노령산맥의 여러가지 산들을 탐방하는 것으로 어느정도 마무리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