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사가 아프다. 온 몸이 무기력하게 힘이 하나도 없으시다고 한다. 어제께 감기몸살약을 먹었는데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내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봤고 병원에 가자고 했다. 엄마는 안간다고 했고, 내가 화가 나서 아프다면서 병원에 안갈꺼면 아프다는 말 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화를 내자, 엄마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병원에 같이 갔고 열을 측정하자 38도가 나왔다. 열이 심해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이것저것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코로나 의증이라 나는 같이 들어가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약을 먹어보고 경과를 보자고 했고 엄마는 약을 먹어도 계속 안좋다고만 한다. 요즘 갱년기인 것 같아서 화애락큐도 사드리고 영양제도 챙겨드렸는데 그런 것들이 전혀 효과를 안 본 모양이다. 치킨을 접을 때가 그리 멀지 않은 듯 싶다.
오늘은 비가 많이 왔고 엄마는 집에서 쉬었다. 주방이모와 나와 둘만 일했고 치킨집이 조용할 리가 없다. 날씨도 안좋아서 대행기사님께 배달요청을 해도 픽업하러 오지 않았다. 음식은 나왔는데 배달기사가 너무 늦게와서 배달을 갔지만 음식이 식어서 환불해주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요즘 같은 때는 배달대행기사가 갑이다.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한다. 그래서 먼 거리에 있는 집은 받지 말자고 주방이모께 말했다. 그런데 내가 배달나간 사이에 이모가 덜컥 먼거리를 받았다. 뭔가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건이 터졌다.
오늘 우리 가게가 배달한 건수는 76건이다. 바쁜 타임에 주문이 몰리면 몇 분에 음식이 나왔고 몇 분에 포장이 다 됐고 몇 분에 기사가 픽업을 했고 그런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주문받고 치킨 만들어서 배달하기 바쁘지 그런 것을 세세하게 체크하고 있을 여유따윈 없다. 한 시간이 좀 넘었을까. 불길하던 그 집에서 치킨이 안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확인해보니 치킨은 나왔는데 기사가 픽업을 아직 안한 상태였다. 치킨이 나온지는 그리 길지 않았다. 기사가 날씨가 안좋아서 픽업이 좀 늦는거 같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한 20분이 지났을까 또 전화가 왔다. 상황을 보니 기사가 픽업은 했는데 다른 곳을 배달하고 간다고 조금 딜레이되는 상황이였다. 제가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날씨가 안좋아서 출발을 했는데 아직 안도착했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옆에서 몇시에 조리가 다 됐냐고 막 화를 내며 물어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수화기 너머 나와 통화하시는 분께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한 20분이 더 지났을까 어떤 사람이 가게로 들어와서 갑자기 주인을 찾았다. 내가 무슨 일이냐 물어보니 배달이 너무 늦어서 왔단다. 아까 전화 온 그 사람이었다. 내가 상황을 보니 기사가 날씨가 안좋아서 그런지 아직 배달을 못했다. (비가 오면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엄청 미끄럽고 쉬운 말로 오토바이는 거의 기어다니는 수준이다.) 주문을 받은 시간으로부터 1시간 40분. 시간이 많이 걸린 건 사실이였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몇 시에 치킨이 나왔고 기사가 언제 왔고 픽업을 몇 시에 했고 언제 출발했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도 많이 지쳐있었나 보다. 손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이냐? 환불을 원하시면 해드리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 더 역정을 냈다. 죄송하다는 말은 수도 없이 했는데 그 말은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사람 때문에 일은 더 밀리고 전화가 와도 전화를 못 받는 상황이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화를 내고 있을때 집에서 배달이 왔다는 연락이 왔다. 당연하다는 듯이 식어서 못먹겠다는 말을 전했고 죄송하다는 말을 또 더하면서 치킨을 새로 해줬다. 새로 해준 치킨을 먹었는지 안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배달의 민족 댓글을 확인해보니 화려한 글이 달렸다. 그 역정낸 사람 뒤로 뒤통수 잘 칠 것같이 생긴 안경잽이가 아들같이 보였는데 그 녀석이 남긴 모양이다.
근데 정말 억울한 건, 가게 바로 옆에 아파트들도 우리가 영업을 7년 이상 했지만 이런 식으로 배달이 늦었다고 쳐들어온 적은 없었다. 이렇게 배달이 밀리고 날씨가 안좋은 날은 보통 2~3시간까지 걸리기도 했다. 오래 걸려서 전화가 오면 우리는 항상 죄송하다고 말하고 빨리 갔다드린다고만 했다. 그렇게 하면 이렇게까지 난리친 사람은 없었다. 하루하루가 힘들다. 우리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치킨을 팔고 있는 걸까.
나는 항상 하나님은 다 아신다고 생각한다. 남의 눈에서 눈물나게 하면 자기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 날이 올거라 생각한다. 배달의 민족에 화려한 글을 적은 그 녀석은 치킨배달하는 나보다도 못한 인생을 평생 살꺼라고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