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 '땡깡'은 '생떼'의 경상도식 표현입니다. 이 글에서는 '얼라'라는 표현을 써서 '생떼'보다는 '땡깡'이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절대 '땡깡'이 표준어인 줄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10년전 이맘때였다. 자주가던 인터넷 커뮤니티 뉴스란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나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 직전 어느 시점에 블로그에 올린 글 (놈현, 너마저...)이 떠올랐다. 그가 내 글을 읽지는 않았겠지만, 그를 끝까지 믿어주지 못하고 돌을 던졌던 사람 중 하나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노무현의 죽음은 나에게 큰 충격과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요즘 자유한국당 얼라들이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쟤네들은 아직도 노무현 때와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그들에게는 좋았던 기억일 수 있다. 어쨌든 노무현 정권이 끝나고 야당이었던 이명박이 집권한 승리의 기억일테니 말이다.
당시 박근혜를 필두로 한 한나라당 얼라들은 오직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했다. 어떤 대안을 내놓는 것도 아니고 이유가 있는 반대도 아니었다. 그냥 막무가내로 노무현이 하는 건 무조건 반대, 무조건 보이콧이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노무현은 무능하고 부패하며 종북이고 빨갱이니 뭘하든 몽니를 부리고 반대해야겠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태업하기 일쑤고 여당이 모여서 회의하자고 하면 어깃장놓고 그래서 지빼고 다른 당끼리 모이면 난리굿도 이런 난리굿이 아니었다. 딱 지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이다. 그 모습의 정점이 바로 노무현 탄핵 사태였다.
당시 한국의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친 미디어는 조중동과 KBS같은 전통 미디어였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국민들에게 이들의 정체가 널리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한나라당이 얼라 짓거리를 하고 있으면 따끔하게 훈육을 해야할 터인데 전통 미디어는 오히려 강하게 두둔하고 나섰다. (독재권력에 훈육당한 미디어의 노예근성은 아닐지?)
코드인사니, 대통령의 실언이니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것들로 대통령과 여당을 맹비난했고 그것이 실제로 국민의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심각할 수준까지 떨어졌다. 당시에는 길가다가 넘어져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고 욕을 하던 시절이었다. 결국 대통령은 떼쓰는 한나라당 얼라들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부와 여당이 야당의 입장을 반영해서 협상의 여지를 넘겨주면 야당에서는 자신들의 주장만 우길 것이 아니라 공생을 위한 방안을 찾을법도 한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더 기고만장해져서 설쳐댔고 그 결과 여당과 정부가 추진했던 개혁입법들은 초기에 일으켰던 논란과 달리 실제 입법은 누더기가 되어서 하나마나한 법이 되거나 아예 입법조차 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가니 오히려 노무현을 지지했던 계층에게도 노무현은 비난받았다. 그 한나라당 정권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원래 지지층과 그 반대쪽 모두에게 비난을 받는 정부였고 그 이후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고 노무현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받고 결국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의 자유한국당 얼라들은 한나라당 얼라 시절때의 승리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 똑같이 하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답은 다른데, 당시와 크게 세가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 미디어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노무현 정부를 지나 명박근혜 시절을 거치면서 전통적 미디어 환경이 완전히 몰락하고 뉴미디어(팟캐스트, 유튜브)가 성장했다. 원래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 그런데 뉴미디어를 통해서 기술적으로 사람들의 욕구가 충족이 가능해졌다. 뉴미디어의 특성이 개인화가 가능하다는 것인데, 그래서 예전처럼 어떤 특정 미디어가 국민 여론 전체에 압도적인 파급력을 갖는 케이스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거기다가 한국적인 특성은 이른바 조중동과 KBS와 같은 전통 미디어의 정체가 노무현과 명박근혜를 거치면서 완전히 탄로나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의 경우보다 전통 미디어의 몰락이 더 가속화된 측면이 있다. 솔직히 조중동의 사설이 노무현때나 지금이나 그 내용이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지금 조중동의 사설은 노무현 때와 달리 전혀 영향력이 없다.
둘째, 현재의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아픔을 너무나도 절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얼라들이 승리의 기억을 가지고 예전 승리공식대로 행동하듯이 지금 정부도 패배의 기억을 가지고 패배공식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유한국당 얼라들이 어떤 땡깡을 쓰든 귓등으로도 안듣는 것이다.
어린 애들의 땡깡은 받아주면 안된다. 어르고 달래서 훈육해야 한다. 합리적인 의견개진에는 당연히 국정의 파트너로서 받아들여야 겠지만, 법안을 패스트트랙 올리는 것 같고 그 난리굿을 직이는데 어떻게 대화가 가능한가. 문무일이 검찰개혁에 대한 자기 나름의 소신을 밝혔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패스트트랙에 법안이 안올라갔으면 문무일이 검경수사권 조정이니 공수처니 관심이나 있었겠나.
자유한국당 얼라들이 저리 설치는 것만큼 민주당과 정부는 완고하다. 얼라들이 하는 얼라짓거리에는 대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셋째, 노무현과 명박근혜를 같이 겪어본 국민들이 있다. 나도 속았고 국민들도 속았다. 전통 미디어와 한나라당 얼라들의 땡깡에 속았다. 무능하고 부패한 종북좌파 대통령이 코드인사하고 아마추어처럼 행정해서 모든 국민들이 피땀흘려 일으킨 나라를 말아먹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다.
근데 그러고 나니 오히려 노무현이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노무현을 겪다가 명박근혜를 겪은 국민들 대다수는 그 보수정권이 얼마나 퇴행적인지를 인식함과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그들에게 속아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 국민들은 전통 미디어나 야당이 뭐라고 말하든 사실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얼마전 KBS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중 60%는 전통 미디어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금의 지지율이 그것에 대한 답이다. 노무현 때라면 미디어와 야당의 십자포화에 진즉에 지지율이 20%에서 왔다갔다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45~50%를 유지 중이다. 국민의 인식이 노무현때와 또 많이 달라진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노무현이 죽은지 10년이 지났다. 미디어도 바뀌었고 민주당도 바뀌었고 지금 대통령도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과 전통 미디어(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KBS)만 바뀌지 않았다. 그들이 제발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