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시험과 기록인대회와 광교의 치킨복지들

그 전날은 종합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문제들을 보는 순간 나는 안드로메다로 날라가버렸다.

그것은 마치 영화 '그래비티'에서 산드라 블록이 마주친 것과 같은 것의 암흑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과 적막속에서 기억 저편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별이 있었다. 젠킨슨이었다. 그 옆에 쉘렌버그라는 별도 보였다. 그 별들 너머 볼스가 보였고 햄이 보였고 테리 쿡이 보였다.

문제를 보는 순간 나는 안드로메다로...

그너머 파란색의 커쇼라는 별이 보였고, 남색의 옐리치라는 별이 보였다. 아 이건 아니다... 뭐 어쨌든... 수많은 별들과 영웅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 희미한 기억의 파편들을 붙잡고 나는 어느새 장대한 우주 대서사시를 집필하고 있었다.

10분 남았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린 순간이었다. 나는 시간의 상대성이론에 동의한다. 순식간에 시험은 끝나있었고 저녁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광교의 치킨복지를 위해 일했다.

기록인대회 프로그램 안내표를 보고 보고싶다고 생각한 것은 보존처리에 대한 세션과 공공기록관리법 개정에 대한 세션이었다. 보존처리는 저번 학기에 수업으로 못 들은 아쉬움이 있었고 공공기록관리법 개정은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2시간 정도 잡고 출발했는데 토요일 아침 대전으로 가는 길은 많이 막혔다. 대전 시내로 들어와서야 차가 별로 없었는데 마치 관중을 향해 달려가는 항우의 심정으로 엑셀을 밟았다. 1시간정도 더 늦게 도착해서 회의장에 들어가니 발표 2개가 끝나있었다. 3번째 발표는 영상기록을 음성인식기술을 통해 스크립트화하는 것의 발표였다.

인식률이 60~85%정도 되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 정도 수준으로는 자동적인 스크립트화는 어려워보였다. 발표한 자료만으로는 스크립트를 만들기 위한 보조도구로서의 쓸모가 더 높아보였다. 따라서 방대한 국가기록원의 영상기록을 스크립트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의 힘과 협업이 필수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생성된 스크립트를 클릭했을때 영상과 매칭해서 보여줄 수 있는 기능이 있는지 질문했다. 그런 기능이 있다면 여러 사람이 음성인식기술로 만들어진 스크립트를 바탕으로 협업을 통해 작업하기 편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발표자의 답변은 다른 공개프로그램이 있으니 그걸 활용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음성인식으로 스크립트한 어플리케이션에서 그런 기능도 같이 제공한다면 훨씬 편의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국가기록관리 혁신의 방향과 목표 세션에서는 공공기록법 개정에서 폐기중지제도가 인상적이었다. 25명으로 증원된 국가기록관리위원회에서 심의하에 국가기록원장이 폐기중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한 제도였다. 문제가 된 기관에 대한 폐기중지는 합리적으로 보이나 폐기중지를 할 정도면 시급한 사항일텐데 위원회를 열고 심의하고 명령한다면 시급성이 잘 담보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의없이도 기록원장이 필요하면 발동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거기다가 2006년에 법이 개정된 이래 12년만의 개정이었는데, 중간중간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는데도 개정되지 못하고 결국 민주당계열로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법개정이 된 것을 생각하면 주기적으로 법개정을 하도록 하는 조항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기록은 권한대행이 탄핵된 대통령의 지정기록물을 지정할 수 있느냐에 대한 개정이 들어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궐위라면 권한대행이 지정권한이 있지만 위법적인 상황에서의 궐위라면 지정권한이 없다는 내용이다. 없는 규정을 만든 것은 잘한 일이나 지나간 일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 기준대로라면 황교안은 위법적 상황에서 지정을 한 셈이다. 그걸 국가기록원은 왜 보고만 있었던 걸까.

마지막 시간은 프로그램 안내표에 [개별세션]이라고 되어있길래 뭔가 특별할 게 있을 것 같아서 들었다. 그런데 [개별세션]이라는 것은 한 시간에 여러내용을 발표한다는 뜻 같았다. 마지막 시간은 직장인처럼 보이는 기록인은 다 떠나고 대학원생들끼리만 앉아 있었다. 대학원생들끼리 있으니 오히려 질의응답이 활발했다. 

저번 기록인대회에서는 마지막 세션은 안듣고 먼저 갔었는데 그때 후회를 많이 했다. 그래서 이번에 끝까지 남아있었는데 남아있었던 보람이 있었던 듯 하다. 기록관리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이루었다고나 할까.

오는 길도 여전히 막혔다. 수많은 붉은색 테일램프를 보며 그날 있었던 기록인대회를 쭉 다시 생각해봤다. 그러면서 왜 공공기록에 관한 법률은 있는데 왜 민간기록에 관한 법률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민간의 기록관리를 당연히 강제할 수는 없겠지만 진흥하기 위한 법률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뒤로하고 그날 밤도 광교의 치킨복지를 위해 일했다.

오늘도 광교의 치킨복지를 위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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