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래로 가장 긴 연휴였다는 추석연휴, 가게 일 도와주느라 거의 쉬지를 못했다. 추석 당일 정도에만 안동에 다녀왔고 그 외의 날엔 가게를 도와줘야 했다. 가게가 유일하게 쉬는 날이 일요일인데, 마침 엔씨하고 롯데의 낙동강 시리즈가 준플레이오프 1차전으로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해 창원이나 부산은 한번도 못가봤는데 이 참에 한번 가봐야지 하고 예매를 했고 내려가게 되었다. 내려갈때는 KTX, 올때는 장시환이 때문에 게임이 길어져서 KTX 취소하고 강제로 새마을호에 타고 돌아와야 했다.
부산역에서 내려 사직야구장으로 가면서 배가 출출해서 국밥 한그릇을 먹었다. 경기도쪽에서 국밥 사먹을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는데, 때론 국밥이 너무 뜨겁게 나온다는 거였다. 그래서 주문한 국밥이 나와서도 바로 못먹고 한 5분동안을 후후 불어가면서 먹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정말 적당한 온도의 국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나오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국수무한리필도 좋았다. 부산사람들이 밥을 빨리 먹는 건 국물의 온도가 적당해서 일수도 있지 않을까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
사직야구장 근처에 왔는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당연히 롯데팬들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점은 엔씨팬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수도권에서 야구게임을 보다보면 정말 상상한 것 이상으로 엔씨팬이 없다라고 느낀 적이 많았는데, 그 엔씨팬들 다 부산에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비인기팀으로 묶이는 SK 넥센 NC KT 중에 유일한 비수도권 연고 구단이다.)
전국에서 경남을 제외하고 엔씨팬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광역단체는 단연 부산이 아닐까. 그래서 엔씨와 롯데는 라이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원정 관중이 와서 어그로끌면 기분좋은 홈 관중은 없으니까 말이다. (관중이 어그로를 굳이 안끌더라도 내 팀이 지는 것만으로도 어그로는 충분히 끌린다. 그리고 엔씨는 사직에서 너무 강하다.)
야구장 인근에 저런 마 함 해보입시다 하는 배너가 곳곳에 걸려있었다. 롯데답게 참 최동원 마케팅 잘한다는 생각에 실소가 절로 나왔다. 저런거 보고 있으면 참 어이가 없다. 최동원 죽었을때 나몰라라 하던 팀이 바로 롯데 자이언츠다. 결국 장례를 한화 이글스에서 전직 2군감독의 대우로서 치뤘다. 한화에서는 그래도 롯데 레전드인데 싶어서 롯데에서 요청하면 바로 철수할려고 했었단다. 그런데 끝까지 아무 말이 없어서 한화 측에서 최동원 장례를 다 치뤘다. 프로원년 구단이라는 롯데 자이언츠의 영구결번선수는 최동원이 유일한데 그 최동원은 살아있을때 영구결번으로 지정될 수 없었다. 최동원은 죽고나서야 영구결번이 될 수 있었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온 동네방네 최동원 마케팅 하고 있는거 보면 참 소가 웃을 일이라는 생각밖에 안난다. '저 마 함 해보입시다' 라는 말은 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이 혼자 4승을 할때 최동원이 남긴 말이다. 이미 3승을 거두고 마지막 등판 전에 선수가 너무 힘들어하자, 당시 강병철 감독이 '우야노, 이까지 왔는데' 하자, 최동원이 했던 말이다. 그렇게 나간 투수가 마지막 승리를 따내며 롯데 자이언츠는 첫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7차전까지 하는 한국시리즈에서 4번 선발 나와서 4번 완투, 1번 구원등판, 총 40이닝을 던져 4승 1패 ERA 1.8을 기록했다.)
게임은 단 세 인물로 압축이 가능했다. 해커, 권희동, 그리고 지석훈.
팽팽한 투수전의 양상으로 진행되다가 11회초에 뜬금없이 지석훈의 2루타가 터졌다. 강민호가 공을 더듬는 사이 기가막힌 지석훈의 3루 진루. 그리고 권희동의 적시타가 터지면서 게임은 완전히 엔씨 방향으로 흘러 결국 엔씨가 승리했다. 그 지석훈이 결승득점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포스트시즌에서 숱한 결승득점을 올렸던 지석훈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장 작년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2:0을 2:3으로 뒤집을때 그 마지막 3점이 되는 득점을 지석훈이 올렸다.
2015년에도 창원 홈에서 포스트시즌 첫 승을 거둔 그 2차전. 동점 적시타를 날렸고, 바로 결승주자가 되어서 결승점을 발로 득점했다. 집에와서 기록을 살펴보니 올해 준플레이오프 1차전까지 엔씨가 승리한 포스트시즌의 7게임 중에 지석훈이 결승득점을 올린 게임은 3게임이었다. 다득점을 거두어서 이긴 게임 말고 역전승리나 1~3점 차 승부에서 지석훈이 결승득점을 올린 게임은 4게임 중 3게임. 가장 타이트한 상황에서 지석훈이 나가서 올린 득점이 결정적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은 케이스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지석훈 당신은 대체...
광란의 11회초를 보내고 마지막 11회말에 들어가면서 찍은 관중석 풍경이다. 게임 보느라고 목이 많이 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있게 본 게임이었다. 시즌 막판 경기력이 조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강팀이야 라는 확신을 다시 가지게 만들어준 게임이었다. 올해 엔씨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이기면서 할일 다 한게 아닌가 싶다. 이제부터는 정말 보너스게임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엔씨답게 포기하지 않고 후회없는 게임 보여주길 바란다.
P.S. : 일각에선 엔씨팬에 대해 배신자니 세탁기니 하는 비하하는 말을 써대는 걸 본적이 있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 딱 한마디만 하고 싶다. 구단이 구단다워야 구단이지, 구단이 구단답지 않으면 그게 구단이냐? 맹자님이 예전에 역성혁명론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면 새로운 성을 가진 군주가 나와서 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엔씨팬이 꼴데강점기에 항의하는 개혁시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