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적기전에, 굳이 저의 정치성향을 밝히자면 저는 친노에 가깝습니다. 그걸 감안하고 이 글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얼마전에 유시민의 정계은퇴 소식을 들었습니다. 듣고나서 안타깝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유시민을 차기 대통령감으로 생각하고 마음속으로나마 지지를 보내고 있었거든요. 그의 정치적 행보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딱 한명 있습니다. 바로 노무현이죠.
노무현의 힘은 계속된 실패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질 줄 알면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자기를 버려왔던 것이 큰 자산이 되어서 결국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요. 유시민은 딱 노무현의 그 길을 뒤따라 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참여계를 가지고 민주당에 합류했으면 국회의원은 그냥 했고 어쩌면 문재인대신 대통령후보가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2008년 총선때도 대구가 아니라 경기도에서 공천했다면 당선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대구에 출마했다가 떨어집니다. 유시민이 가장 권력욕심을 냈던 순간이 경기도지사 출마의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이 유시민이 정치인으로서 그의 야심을 가장 드러냈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안타깝게 낙선했죠. 노무현의 길을 따라가던 유시민은 딱 한순간 외도했지만 그 이후에는 알다시피 다시 노무현의 길을 따라갑니다.
그랬던 그가, 2012년 대선이 끝나고 정계은퇴를 선언합니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저번 대선의 결과를 유시민이 지는 형국입니다. 결국 그는 가장 노무현다운 마무리를 선택했습니다. (그렇다고 문재인의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부산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끝까지 의석을 지키고 의정활동을 보이면서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어쩌면 유시민의 정계은퇴는 노무현식 탈권위 정치실험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노무현을 생각해볼까요? 지금까지의 대통령과 앞으로의 대통령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만큼 권위를 내세우지 않을 대통령이 있을까요? 심지어 청와대에 놀러온 관광객이 노무현 전 대통령보고 담배를 빌려달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입니다.
노무현식 탈권위 정치실험의 가장 충실한 이행자이자 추종자가 바로 유시민이였습니다. 유시민이 파주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국회의 출석했던 그 모습을 기억하시는 사람이 아직도 있을 겁니다. 양복이 아니라 캐쥬얼차림의 평상복을 입고 출석했죠. 저는 그 모습이 가장 유시민스럽고 그래서 가장 노무현스러웠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린우리당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그 이전의 보스정치의 폐해를 극복해보겠다며 당대표를 없애고 공동지배체제를 도입했던 정당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의 모든 권한을 손에 쥔 보스를 없앤 결과는 수많은 계파간의 자리나눠먹기 혹은 자기 밥그릇 보전하기의 양상만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조폭계에서 한 조직을 없애면 또다른 조직이 생겨나는 것과 같은 이치였습니다. 당내에서 수많은 계파들이 서로 갈등하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정책마저 제대로 처리해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열린우리당은 붕괴하고 그 여파가 MB정부를 출범시키고 말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계파간의 자리나눠먹기 싸움을 계속 하다가 결국 이번에도 선거를 지고 말았죠. 4년내내 유력한 대권후보 한명을 못만들고 선거 1년전에 가서야 대통령후보를 낸 민주당은 어쩌면 참으로 무능한 정당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민주당의 탈권위 정치실험이 효과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서 그 전의 보스가 가졌던 막강한 권한과는 다소 구별되는, 새로운 형태의 지도자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탈권위를 한번 해본 경험은 적어도 그 이전의 막강한 권위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탈권위와 막강한 권위 사이에서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낸다면 민주당은 희망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유시민의 정계복귀는 가능성이 낮아보입니다. 노무현식 탈권위를 원했던 그 시대를 지났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국민들도 완벽한 탈권위가 결국 혼란을 가져왔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민주적이지만 다소의 권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유시민은 그 자연인자체가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힘들거라고 보는 겁니다.
어쨌든 유시민의 정계은퇴는 안타깝지만 또 역사가 이렇게 흘러가는 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다 줍니다. 유시민이 정치인으로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던져준 '어떻게 살 것인가'를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