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때리다가 어느순간 안때리면, 애들이 때릴때만큼은 말을 안듣는게 당연하다. 어느 항생제에 병원균이 적응이 된다면 당연히 그 병원균을 이기기 위해서는 더 강한 항생제가 필요하다. 더 강한 항생제보다 약한 항생제를 투입하면 당연히 전에 쓰던 그 항생제보다 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학생들한테도 마찬가지다. 가장 극단적이고 강력한 수단을 적용한 이상, 그것보다 약한 수준의 체벌이 들어간다면 당연히 가장 극단적이고 강력한 수단을 이용할때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교사가 학생에게 가한 체벌적 폭행도 가장 극단적인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즉각적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폭행의 강도가 더 세져야만 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보다 더 낮은 수준의 체벌이 가해지면 가장 강력한 체벌을 가할때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인거다.
교사들은 학교에서의 체벌적 폭행이 사라지면 아이들이 말을 잘 안듣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미 아이들이 체벌적 폭행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체벌적 폭행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어느순간 안 때리기 시작하면 당연히 때릴때만큼은 말을 안듣는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단기적인 사안일뿐이다. 아이들이 안맞는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교사들이 주장하는 저 주장은 완전한 허구라고 밝혀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언제까지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야만을 허용해야하는 것인가? 아이들이라고 인격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아이들은 우리들보다 나이가 어릴 뿐이다. 언젠가는 사라져야할 학교안에서의 체벌적 폭행이었다. 당장 지금은 아이들이 말을 안들을 수 있겠지만, 크게보고 언젠가는 맞닥뜨려야할 일이었다. 크게 보고 학교안 체벌적 폭행은 당연히 금지되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