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다가 보고 싶어서 였을까?
뜬금없이 영덕에를 갔다 왔다.
그러니까 저번주 초였었던 거 같은데,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그 날이 제사인데, 집안 식구들은 다 바빠서 못가니까 지금 방학중인 내가 가족을 대표해서 갔다오너라 그런 거였었다. 오옷! 갑자기 웬 떡이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브 한지도 꽤 오래 되었었는데....ㅋ 안동 간 김에 드라이브도 좀 하고 바람도 좀 쐬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름 계획도 세웠다. 안동갈때는 고속도로로 빨리 가고 올때는 동해안 해안도로로 가서 바다도 보고 바람도 쐬면서 여유롭게 부산에 내려와야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집에 와서 갈 채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또 연락이 왔다. 부산에는 눈이 안오지만, 안동 그쪽에는 눈이 너무 많이 왔다는 거였다. 그래서 길도 너무 미끄럽고 차도 많이 막히니까 오늘은 좀 가기 힘들겠다고 그러는 거였다. 순간, 참 씁쓸했다. 이미 내 마음은 안동에 가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설국! 드넓은 바다! 맑은 하늘! 상쾌한 바람! 그 모든 것들이 손에 잡힐 듯 했다. 근데 참 씁쓸하게도... 나는 안동에 갈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이틀쯤 지났을까? 한번 들뜬 마음은 쉽게 가라앉아지지가 않았고 공부도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를 다시 설득했다. 할아버지한테 새해가 되었는데, 새해인사를 한번 해야지 않을까, 저번에 추석때도 못갔으니까 이번에는 얼굴을 한번 보여드려야 한다, 할아버지도 손자를 상당히 보고싶어하신다 등등 온갖 감언이설로 엄마를 설득시켰고, 마침내 설득에 성공했다. 엄마 차키를 득템하고 카드도 득템하고 안동으로 내달렸다.
무사히 안동에 도착해서 할아버지께 새해인사도 하고, 시골에서의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동해안으로 내달렸다. 어디를 가볼까 하고 지도를 꺼냈다. 동해안 지도를 한번 훑어보는데 굉장히 낯익은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죽변"
아 여기가 죽변이구나. 지금은 다른 과지만 한때는 같은 학회소속이었고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선배의 고향이었다. 아 여기가 말로만 듣던 죽변이구나. 그래, 여길 한번 가보자. 그 선배랑은 연락도 잘 안되고 그러지만 이렇게 시간이 많이 남을때, 그리고 안동까지 올라왔을때 한번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죽변으로 출발했다.
죽변으로 계속 가다가, 영주를 좀 지났을때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차 써야 되니까 오후 6시까진 부산에 내려오라고. 내비로 시간을 계산해봤는데, 죽변갔다가 오면 저녁 9시 부산 도착이었다. 헐... 어쩔 수 없었다. 죽변행은 포기해야했지만 동해안을 타고 내려가야한다는 내 계획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죽변 대신 갈 곳을 지도로 지켜보았는데 눈에 영덕이 들어왔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영덕에 한번 가보자. 그래서 다시 안동으로 내려와서 영덕쪽으로 가는데, 그 도로가 예술이었다. 청송을 지나가는 도로로 기억하는데, 도로가 진짜 예뻤다. 아니 도로가 예뻤다기 보다는 배경이 정말 괜찮았지.
그리고 영덕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다에 갔는데, 정말 뭐 없었다. 그냥 전형적인 시골항구. 그런 느낌이었다. 차를 세우고 나갔는데, 바람이 너무 추웠다. 그 날이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혼자 분위기 좀 잡아보고, 그럴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너무 추웠다. 너무 추워서 그런지 사람들도 별로 없고 나 혼자 괜히 청승떠는 거 같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좀 걸어보자 했는데, 아 진짜 너무 추운 거였다. 아 안되겠다. 그냥 차에 타자. 시간도 좀 빠듯했고 빨리 부산에 내려가야했다.
차 시동을 걸고, 몸을 좀 녹이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인순이가 부른 '겨울바다'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인생이라는 건 참 이렇게 극적이다. 노래가 진짜 너무 좋았는데, 너무나도 놀라운 건 그 타이밍. 난 엄마차가 범블비가 된 것은 아닌지, 순간 그런 착각을 했다.
노래도 노래지만 가사가 정말 작살이었다. 진짜 한편의 시와 같은 가사는 너무 아름다웠고 눈 앞에 펼쳐진 영덕바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뮤직비디오였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겨울바다로 가자.
메워진 가슴을 열어 보자.
스치는 바람보며 너의 가슴 같이 하자.
너에게 있던 모든 괴로움들은,
파도에 던져버려 잊어버리고.
허탈한 마음으로 하늘을 보라.
너무나 아름다운 곳을.
겨울바다로 그대와 달려가고파.
파도가 숨쉬는 곳에.
끝없이 멀리 보이는 수평선까지.
넘치는 기쁨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서 이 곡을 검색해봤다. 원래는 유영석씨가 부른 곡이고, 이번에 유영석씨 헌정앨범이 나오면서 그 앨범안에 인순이씨가 부른 노래를 내가 들은 거였다. 인순이가 부른 겨울바다를 아직 안 들어보신 분이시라면 꼭 한번 들어보시기를... 위에 동영상은 인순이가 부른 동영상이 없어서 유영석씨가 부른 걸로 올린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유영석씨가 부른 겨울바다보다 인순이가 부른 겨울바다가 더 좋은 거 같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