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에 있었던 대통령 탄핵사건. 해외에서도 많은 화제가 되었던 이 사건은 2004년을 대표하는 사건 중에 하나였다. 그때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청와대에서 은거하면서 보았다는 책이 바로 이 칼의 노래 란 책이다.
요즘 이순신이 참 뜨고 있는 거 같다. 혹자가 평하듯이,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절망속에서 희망이라는 불꽃을 쏘아올린 이순신이라는 인물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현재 현시대상황에 가장 알맞는 인간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KBS는 얼마전 많은 돈을 들여서 '불멸의 이순신' 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 책을 읽기전에 사람들의 그런 평가에 동조하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임진왜란 시작과 동시에 시작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순신이 백의종군한 다음에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정유재란으로 왜군이 다시 쳐들어와서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 라는 벼슬을 받음으로서 시작되는 것이다. 당시 조선수군은 12척이 남아있었다. 이순신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모았던 300여척의 전선과 8000여명의 병력은 그전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원균이 다 잃은 후였다.
전선 12척으로 300여척의 적군을 상대하라. 이것이 돌아온 이순신에게 내려진 첫번째 임무였다. 이순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12척의 전선으로 330여척의 적군을 괴멸시킨다. 나약한 사람이라면 해보지도 않고 피해서 도망갔겠지만, 그는 1프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절망속에서 희망을 쏘아낸 것이다. 그는 불가능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명확히 보인 것이다.
이 소설은 사람으로서의 이순신을 부각하고 있다. 이 소설자체가 1인칭주인공시점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순신의 심리가 매우 잘 드러나고 있다. 이순신은 그 당시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였다. 선조는 그에게 무슨 죄를 씌워서라도 그를 죽이고 싶어했다. 선조는 이순신을 죽임으로서 자신의 사직을 보존하고자 하였다. 이순신은 고문을 당하면서 죽음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갔다.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죽음의 형장에서 다시 전쟁터로 부른 것은 다름아닌 그의 적이였다. 즉, 자신이 베어야만 할 적이 자신의 목숨을 부지시켜준 것이다. 자신이 충성을 바치고 있는 존재는 자기자신을 죽이려 하는데 비해, 자신의 적은 자기의 목숨을 지켜준 것이다.
그런 상황속에서 그의 마음속엔 칼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잘못된 세상에 대한 그의 분노, 가족을 잃어야 했던 그의 분노. 하지만 그는 그 칼을 몸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서 징징 울고 있다는 칼의 노래는 단지 그의 가슴속에서만 울뿐이였다.
이 소설에서 대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순신의 독백과 이순신이 설명하는 상황설명, 이런 것이 주가 된다. 이 와중에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7년동안에 걸친 왜와의 전쟁이 끝날 무렵, 명나라와 왜 사이에 강화가 이루어지는 부분이였다.
'일본군과 명군은 돌아갈 고향이 있을 것이다.'
그는 이 한마디로 모든 상황설명을 종료한다. 일본군과 명군은 돌아갈 고향이 있었다. 그러니 강화란 단어를 쉽게 꺼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순신과 조선백성들은 달랐다. 그들은 돌아갈 고향이 없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그가 베어야할 적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전쟁의 마지막 순간 노량으로 그 노량으로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에겐 돌아갈 고향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속에서 징징 울고 있던 칼의 노래를 노량에서 산화시켜야 했던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이순신관련 서적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었다. 기존의 이순신 책들은 사람으로서의 이순신은 부각시키기 보다는 그가 보여준 화려한 공적에 더 관심을 보인다. 12여척의 전선으로 330여척의 전선을 깨부쉈다는 그 명량해전의 이야기는 작가에게 분명 흥미거리가 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전공들을 담담한 필체로 서술하고 있다.
작가 김훈씨는 그의 화려한 전공보다는 '사람' 이순신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 덕분에 사람 이순신, 7년간에 걸친 전쟁으로 자기자신을 산화시켰던 '사람'으로서의 이순신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