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말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었다. 그래서 혼자 보러 갔다. 점점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게 익숙해지고 있다. 혼자 영화를 보면 좋은 점이 많다. 정말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다. 조금은 남들하고 다른 내 취향대로 보고 싶은 영화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거다. 다른 사람들하고 영화보러 가면 어떤 영화를 봐야할지 합의를 봐야하니까. 그런 것들이 귀찮은 게지. 물론 볼 영화가 미리 정해져 있다면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또 내가 그 영화를 봤다고 하면 마땅히 볼 영화가 없을거 같아서, 그 영화 봤다고 말도 못하고, 봤던 영화를 한번 더 안봐도 된다.
가끔 영화를 보다 나올때, 커플들이 나오는 모습을 보면 한번씩 부럽긴 하다. 하지만 어쩌겠어. 아직 좋은 사람이 없는 걸. 그 사람들 부럽다고, 나 외롭다고 아무나 사귈수는 없는 거잖아.
어쨌든 나는 어제께 부산극장에서 따끈따끈한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를 봤다. (※ 밑에 스포일러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쥐』(2009) 박찬욱 감독 / 송강호, 김옥빈 주연.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를 봤던 사람들로부터 평을 대충 들었는데, 일관적인 내용은 저질이다, 너무 자극적이다, 영화가 불건전하다 등등 그런 류의 평들을 많이 들었었다. 근데 실제로 보니, 왠걸 영화는 그렇게 불건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건전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아주 평온히 일상속으로 돌아와서 내 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한동안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무지개 여신』 같은 영화보다 이런 영화가 사회적으로 보면 훨씬 건전한 영화다.
영화의 주제는 간단명료하다.
"인간의 욕망은 공허하다."
그렇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산다. 식욕, 성욕, 물욕은 물론이고 일탈에 대한 욕망 같은 것들도 가지고 산다. 하지만 실제로 이 사회속에서 그런 욕망들을 마음껏 펼쳐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현실은 가상세계가 아니라, 실제 세계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켜보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마음속으로 자제할 뿐, 밖으로 표출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관객들의 그런 욕망을 대리만족시켜 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그런 욕망들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그 욕망들도 떠오르는 해와 함께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 사라져버린 욕망들을 보며 관객들은 다시 평온히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욕망의 대리만족은 그대로 충족시켜 둔채, 우리의 현실세계속에서 다시 삶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의외로 바른생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올드보이때는 쓸데없는 뒷담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냉혹히 보여주더니,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복수와 용서의 화두를, 이번에는 욕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공허하고 덧없는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의 영상들, 자극적이다. 그리고 무척이나 강렬한 영상들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감독이 주제를 잘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그리고 추가로 더 한다면 그런 쎈 영상들은 영화의 흥행을 위한 이슈요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자극적인 것들로 이 영화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조금 심한게 아닌가 싶다. 확실히 송강호 형의 성기 노출은 나도 깜짝 놀랐었다. 솔직히 보고 싶지도 않았고. 또 영화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욕망을 배출하는 장면은 우리의 눈에 그리 이뻐보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욕망만을 추구했을때 우리의 모습도 그렇게 비춰지는 것은 아닐지. 그런 생각을 해본다.
거기다 더 놀라웠던 것은 김옥빈의 연기. 욕망에 사로잡혀서 한 사람을 타락하게 만드는 팜므파탈 역할을 아주 잘 소화해냈다. 『아들의 여자』에서의 채시라나, 『타짜』에서의 김혜수와는 또다른, 순진한 욕망의 화신으로서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새로운 스타일의 팜므파탈을 아주 잘 소화해냈다. 굿굿굿~ 아주 베리 굿~이다.
이제 더이상 렌즈끼고 춤추던 시절의 김옥빈이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바로 이 영화의 분위기.
기존 박찬욱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런 분위기들, 이 영화에도 계속 이어진다.
스타일리스트 박찬욱. 멋있다.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이 영화를 즐기자.
그러면 해답은 그냥 나온다.
박찬욱 감독의 욕망에 대한 영화, 『박쥐』
내가 볼 때, 이 영화 대박이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9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