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있을 때였다. 내무반안에 아주 오래된 책들로 구성된 조그마한 문고가 하나 있었다. 그 안에는 정말 이런 책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깥 사회에서는 잘 구경하지 못한 오래된 책들이 여러권 있었다. 그 중에 하나 기억나는 책이 바로 『양들의 침묵』이다.
그 소설은 잘 알려진 영화, 『양들의 침묵』의 원작소설이였는데, 내가 본 그 소설은 헐리우드에서 원작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이후에 우리나라 말로 번역된 모양이였다. 역자가 적어놓은 서문에서 소설과 영화라는 서로 다른 매체가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지 혹은 활자와 영화가 어디서 만나고 헤어지는지 살펴보면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거라고 적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난 안타깝게도 그 소설을 읽기 전까지 헐리우드 영화 『양들의 침묵』을 보지 못했었다. 따라서 활자와 영상이 어디서 만나고 헤어지는지는 확인해볼 수가 없었다.
『양들의 침묵』(1991) 조나단 드미 감독 / 조디 포스터, 안소니 홉킨스 주연.
그러다가 얼마전에 정말 우연히 『양들의 침묵』 DVD를 보게 되었다. (요즘 떠들썩한 군포 여대생납치살해사건 같은거랑은 전혀 상관없이 봤다. 이 영화 보고 나서 네이버에 갔다가 그 사건을 알게 되었으니...)
그리고 내린 결론은, 역시 두시간짜리 영화는 활자가 가진 디테일을 따라 갈 수가 없다는 거였다. 물론 이 영화, "양들의 침묵"은 무척 잘 만든, 훌륭한 스릴러영화임이 분명하다. 감독의 연출도 뛰어나고, 배우들의 호연도 매우 훌륭하다. 특히 안소니 홉킨스의 정말 사람잡아먹을 듯한 그 눈빛은 그야말로 감탄할만한 것이 확실하다.
헬로우, 스타알링?
그래도 역시 활자가 가진 디테일을 영화가 취할 수는 없었다. 소설 속에서는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인과관계가 비교적 명확하게 진행된 반면, 영화 속에서는 짦은 런닝타임으로 인해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조금은 우연적으로 느껴진다. 또한 살인마 한니발이 그 전에 벌였던 살인행각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생략되어있고.
내 생각에 아직까지도 우리 시대 최고의 미디어는 바로 '활자'가 아닌가 싶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강호순씨 사건같은 걸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 세상에 '진짜 나쁜 놈'은 자기가 엄청 나쁜 짓을 하면서 자기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 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적어도 뭐가 옳은 것이고 뭐가 나쁜 것인지 아는 사람이니까. 아주 조금, 나아질 여지는 있는 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