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3:13, 우리말성경]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인데 이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전한 수많은 메시지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뭐라고 말할까. 아마 사랑이 아닐지 싶다.
고린도전서 13장에는 거기에 대해 아주 잘 설명되어 있지만, 나에게 사랑이란 것은 어떤 존재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낯선 존재를 만나게 되면 그 존재를 나의 인식체계에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나의 인식체계 안에서 들어올 수 있도록 그것을 변환하게 된다. 이를테면, 이미지 데이터를 인터넷 상에서 로딩하기 위해서는 어떤 텍스트 데이터로 변환을 해야 그 이미지를 불러올 수 있듯이 말이다. 반대로 사랑이란 것은 그런 변환작업 없이 완전한 날 것 그대로의 존재를 나의 삶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입안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쫄깃한 전어 세꼬시회의 식감을 날 것 그대로 느끼는 것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대하소설을 쓰며 살아간다. 거기서 주연과 조연이 나뉠텐데, 당연히 주연은 나이고 조연은 나를 제외한 모두를 일컫는 것일테다. 그래서 사랑이란 내가 쓰고 있는 대하소설의 조연을 주연으로 만들어주는 일이다. 그래서 그 존재 자체를 받아들여서 나의 일대기 안에서 같이 살아 숨쉬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늠이 된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일대기를 적어놓은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자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그런 분이시라면 그냥 모든 일을 자기가 다 하면 된다. 굳이 인간에게 의사를 묻고 그가 순종하기를 결정하면 일을 진행하는 형태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어떠한가? 자기 일을 해줄 누군가를 꼭 찾는다. 그리고 그가 순종하기를 결정하면 꼭 그를 통해서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한낱 이 '만들어진 것'의 자유의지까지 존중할 수 있는 것일까?
[요3:3-8, 우리말성경]
3 예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고데모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나겠습니까? 태어나려고 어머니의 배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지 않습니까?"
5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체에서 난 것은 육체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7 '다시 태어나야 한다'라고 말한 것을 너희는 이상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지만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도 모두 이와 같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대체 뭐하는 놈인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우리를 사람의 마음을 쟁취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마음을 얻는 사람들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우리의 방법은 투쟁이 아니라 '친절과 온유함'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하는 당연한 반론이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친절과 온유함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인 것인가. 일제가 광기에 미쳐서 일본군 위안부를 징집해서 성노예로 만들고 온갖 악행을 하는데, 그때도 너는 기도만 하면서 친절과 온유함으로만 살아갈 것인가.
그래서 생각을 해본다. 호시절에 태어나서 평화로운 시절에 지방 향리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가장 큰 사회적 갈등이 이념갈등도 아니고, 빈부갈등도 아니고, 인종갈등도 아니고, 종교갈등도 아니고, 고작 남녀갈등인 이 시대에 태어난 내가, 100년 전에 태어나서 일제시대에 정신대 강제 징집 명령을 받은 지방 향리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때도 친절과 온유함으로만 사는 것이 기독교인으로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근데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애초에 에덴동산에서 살게 할려고 우리 인류를 창조했다. 우리가 에덴동산에서만 산다면 '친절과 온유함'으로만 살아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꼭 먹는 바람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선과 악을 구별하는 눈을 가져버렸다. 그 바람에 우리는 '친절과 온유함' 만으로는 살 수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었고, 시대를 구별하는 능력은 가지게 되었으니 그 능력을 잘 활용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상에서의 구체적인 생활방법은 '친절과 온유함'을 기본값으로 하되, 반드시 시대를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가져서 '친절과 온유함'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시절을 만난다면 그때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성전을 뒤엎어버렸던 예수님처럼 투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