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경남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학교에 가면 그 아이는 항상 내 자리 앞에 와서는 머리를 밀치며 괴롭혔다. 일어나 있으면 뺨을 툭툭 쳤고, 엎드려 자고 있으면 그 머리를 들었다가 책상에 내리찍으면서 잠을 깨웠다. 그 자리를 피할려고 일어나면 다시 옷깃을 낚아채서 자리에 앉혔다. 그 아이는 나를 왜 그렇게 싫어했을까? 어느 날은 나보고 학교를 마치고 남으라고 했다. 나는 아무 볼 일이 없고 남으면 무슨 일을 할지 뻔히 알기 때문에 쿨하게 무시하고 집에 갔다. 그 다음날 학교를 가니 나를 덕형관으로 질질 끌고 갔다. 지금 생각해봐도 왜 그 아이가 나보고 남으라고 했는지 그 이유가 기억이 안난다. 확실한 건 내가 그 아이에게 맞을만큼 잘못할 일은 없었다.
학교에서의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다. 어느 날은 도저히 학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한테 학교를 그만두면 안되냐고 말했다. 엄마는 왜 그러냐고 했고 학교에서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엄마가 당시 담임선생님한테 이야기를 했고 그 일이 있은 후로 그 아이의 괴롭힘은 좀 줄어들었다. 그 이후에도 그 아이의 무리한 요구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정답을 마킹한 OMR 답안지를 보여달라고 했고, 필기한 노트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런데 전에 한 번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다 요구대로 해주었다. 그러니 큰 괴롭힘은 없었다. 그 아이의 노골적인 괴롭힘이 사라지자 친구들 사이의 따돌림 같은 것도 없어졌다. 학폭위 같은 것은 열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엔 선생님의 권위가 좀 있었던 것 같다.
그 해 겨울, 고3을 앞둔 어느 날에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심한 축농증을 앓고 있었는데 축농증과는 별개로 그 날 따라 피곤했는지 쿨하게 엎드려서 잤다. 한참 시간이 지났을 때 누군가가 나를 깨웠고 앞으로 불려나갔다. 개량한복을 입고 빨간 안경을 낀 국어선생님이였다. 내 옆에서 같이 자던 친구도 불려나갔는데, 똑같이 손바닥에 회초리로 두 대를 때리고 그 친구는 다시 자리로 가라고 하고 나는 복도에 서있으라고 했다. 나는 그 순간의 억울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선생님께 똑같이 잤는데 나는 왜 복도에 서있으라고 하냐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 순간 선생님이 손목시계를 풀었다. 내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졌던 순간, 선생님의 불꽃 싸대기가 나의 뺨으로 날라왔다.
뭐? 니는 엎드려서 퍼져서 자고 있고 니 옆에 금마는 살짝살짝 졸고 있는데! 그게 똑같나! 피곤해보여서 밖에 서있으라고 했더니! 뭐가 어쩌고 저째!
한마디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불꽃 싸대기가 날라들었고 나는 뒷걸음을 치면서 쭉 밀려났다. 교실 앞 복도쪽 문에서 맞기 시작해서 뒷걸음을 치다보니 어느새 강단을 지나 운동장쪽 창가까지 몰려있었다. 이제 더 이상 뒤로 갈 공간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 마지막 카운터 싸대기가 날라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코에서 코피가 아니라 거대한 콧물덩어리가 빵 하고 분출되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90도 위에서 그걸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콧물이라기보다 하나의 뻥튀기 과자처럼 보였다. 그 순간에 아픔보다도 어떻게 저렇게 큰 것이 내 몸에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짐싸서 집에 가라고 했고 나는 최대한 쿨한척 가방을 싸서 교실에 나왔다. 국어선생님이 여자선생님이셔서 그랬는지 아픔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무언가 3년동안 묵은 콧물이 빠져나간 것 같은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이었다. 그 이후 그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축농증은 걸리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께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맞았다. 특별히 고2때를 상기해보면 담임선생님께 내 허벅지 안쪽 살과 목 뒤의 연한 살을 징하게 맞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어떤 선생님도 학대라고 느껴지는 체벌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선생님의 불꽃 싸대기는 약손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