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일을 하면서 폰을 새로 개통했다. 요즘에는 배달도 비대면이라 집앞에 놔두고 치킨배달했습니다 라고 메시지를 남길때가 많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원래 내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남겨두고 왔는데, 어느순간 좀 꺼리침하고 왠지 T전화에 치킨배달아저씨라는 메모가 적혀있을 것 같아서 폰을 새로 개통했다. 번호는 꽤 독특한 걸 골랐는데, 이 번호를 쓰면서 이 번호를 쓰던 전 사람은 분명 엘리트임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진료비 청구건 지급 안내문자가 들어오고, 부산의 모 병원법인으로 되어있는 차량리스 안내문자가 들어온다. 부산의 모 고등학교 동창회의 부고문자가 종종 들어오기도 했고, 어떤 개잡주에 수만주를 투자하셨는지 15원을 배당한다는 문자도 들어왔다. 특히 자주 오는 문자는 알라딘 인터넷서점에서 날라오는 문자였는데, 한번에 책을 살때 이세계 화이트노벨을 30권씩 구입하고 그런다. 아마 아들이 입시스트레스로 소설책 마음껏 읽으라고 카드를 내 준 모양이다. 뭐 어쨌든 이 사람에게 오는 문자를 보고 있으면 역시 엘리트들은 명절인사를 이리 많이 받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심지어는 많은 문자들이 [web발신]도 안 붙어있다. (죄송하지만 당신은 새 번호를 받지 못하셨습니다...)
올해 2월 12일 방송된 최경영의 최강시사에는 명절안부문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강원국작가는 공해덩어리라고 했고, 이호선교수는 그 문자를 보낸 사람과 만나지 않아야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항상 연말이 되면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모든 사람에게 한해 고생하셨고 내년에도 더 힘찬 한해 보내시라는 문자를 보낸다. 그래서 그 말을 듣고 좀 얹짢았다. 그 사람들에게는 공해덩어리라도 나는 그 문구를 생각해내기 위해 꽤 고민했기 때문이다.
근데 이 사람 번호를 써보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워낙에 문자가 많이 오니 [web발신] 붙은 정체불명의 문자는 그저그런 흘러가는 공해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럴수록 더 가열차게 문자를, 내가 죽을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연락처에 있는 사람이야 엘리트도 아니고, 나도 엘리트가 될 맘은 없으니 그런 사람들은 연말안부문자도 잘 못 받을수도 있지 않겠나 라는 생각이어서다. 그런 사람들끼리 연말을 기회로 즐겁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할까.
앞으로 저의 연말안부문자를 받지 못하신다면, 당신은 내가 인정하는 엘리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