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있던 일정이 변경되어 서울기록원에 다녀왔다. 서울기록원은 국내 최고수준의 아카이브전시기관 중 하나이다. 지금은 특별전시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하여 '넘어넘어: 진실을 말하는 용기'라는 전시를 하고 있는데 그게 곧 종료될 예정이다.
사실 보기 전에는 뻔한 이야기일거니 생각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그 옛날 모래시계부터 화려한 휴가, 제5공화국, 26년, 최근의 택시운전사까지 너무나 많이 다룬 소재이고 나는 책으로도 여러 번 읽은 적이 있다. 뭐 어쨌든 뻔한 이야기일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지만 보고 나니, 나의 생각이 경솔했음을 깨달았다.
이 전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세상에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던 단행본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를 여러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광주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파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당시 삼엄했던 신군부 정부에 의해 언론이 철저히 통제되었기 때문에 광주의 이야기는 알려지지 못했는데, 용기있는 지식인의 활동을 통해 단행본이 출간되었고 그 보고서를 통해 광주의 일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 전시는 그 전의 서울 도시개발 전시와는 달리 기록원의 기록만을 다루지 않는다. (지금도 상설전시 중이다.) 어떤 용기있는 자가 광주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열심히 아카이빙한 내용이 출간되어 광주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그 사건의 전후를, 서울기록원은 맥락을 두껍게 추적하여 내러티브를 갖춘 전시로 만들어냈다. 어쩌면 실체적 진실을 이야기하는 공공기록 중 남겨진 것은 한 줌도 안될 수 있다. 공공 아카이브의 종사자는 공적으로 남겨진 기록과 그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을 이어붙이는 아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래서 각 계층마다 적절히 구성되어지고 잘 작동하는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사실 광주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기록이 공공기관에 남아있을까. 아키비스트의 할 일은 공공기록이 말하지 않는 공백을 다양한 사회적 구성원과 함께 맞추어 나가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만든 이재의의 구술 인터뷰가 흥미로웠다. 광주의 진실을 이야기해줄 40명의 인터뷰 대상을 고르는데 그 조건은 절대 회유당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유혹에 약한 나는 아마 절대 대상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블로그의 이름은 용기일보이지만 사실 나는 플라스틱 용기 분리배출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진짜 용기는 이 책을 만든 사람들과 광주의 진실을 이야기해 준 그 사람들에게 붙일 수 있는 단어이다.
기록관이 박물관, 미술관 전시와 차별성을 가지려면 비현용기록의 전시에만 머물러선 안된다. 비현용기록을 다룬다면 이미 근현대사 박물관과 차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과감하게 현용기록, 준현용기록까지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COVID19 팬데믹을 다룬 전시를 충분히 기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KBS 대하드라마에서 임진왜란을 다룬 드라마 중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불멸의 이순신'이 있고 류성룡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징비록'이 있다. 마찬가지로 COVID19 팬데믹을 중심으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관련된 기록물로 내러티브의 한 축을 세우고, 최일선에서 활약한 무명의 간호요원들과 관련된 기록물로 내러티브의 또 한 축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작년 8월 한 여름임에도 대유행 사태를 불러온 전광훈과 관련된 기록물로 내러티브의 한 축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모아 다면적으로 전시를 기획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이를 계기로 최근의 기록까지 적극적으로 공개한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주게되고 국민의 기록관 이용을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
서울기록원에 간 김에, 이곳 저곳 둘러보고 왔다. 주말임에도 국내에서 정말 몇 안되는 레퍼런스 아키비스트가 출근해 있길래, 서울기록원의 레퍼런스 서비스에 대한 질문을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아키비스트 선생님이 매우 친절하게 답을 해줘서 그 내용을 여기에 간단히 정리해본다. (여기서 설명되는 프로세스는 정보공개청구와는 다른 프로세스이다.)
은평구 서울기록원에서 열람이 가능한 기록은 서울시와 그 산하기관이 생산한 기록물 중 보존기간이 30년이상 책정된 기록 중에 10년이상이 경과된 시점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즉, 올해는 2009년까지의 기록물이 열람가능하고 올해 중으로 2010년의 기록물이 이관될 예정이다. 기록물 열람은 실물열람이 아닌 디지털전자문서를 모니터로 열람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2000년대 이후의 기록물은 처음부터 전자기록물로 생산된 것이고, 그 이전의 기록물도 디지털화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화가 진행되지 않은 기록물이라면 실물로 열람이 되기도 한다.
서울기록원에 방문할 민원인은 우선 기록물이 공개인지 비공개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전화나 홈페이지 문의란을 통해 공개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공개 기록물의 경우에 서울기록원 홈페이지에 원문이 올라온 기록도 있지만 아직까지 안 올라온 기록도 있다. 그 기록은 서울기록원에 직접 방문해서 열람해야 하는데 서약서와 열람 신청서를 작성하고 현장에서 바로 열람이 가능하다. (홈페이지에서 기록을 검색하고 바로 공개, 비공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은 준비중이라고 한다.)
비공개 기록물은 홈페이지에 기록열람 문의와 같은 메뉴나 전화를 통해 레퍼런스 아키비스트에게 요청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레퍼런스 아키비스트는 비공개 기록의 열람여부를 결정하고 민원인에게 피드백을 준다. 피드백을 받은 민원인은 서울기록원을 방문하여 서약서와 제한적 열람 신청서를 작성한 후 현장에서 열람할 수 있다. (여기서 비공개 결정이 나면 정보공개청구제도를 활용해서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서울기록원 열람실 현장에서 메일링 서비스를 위한 신청서와 설문지를 받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메일링 서비스와 설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메일링서비스를 활용하면 민원인의 기록원 재방문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아마존에서 야구 방망이를 사면, 야구 방망이를 산 사람은 야구 글로브도 산다며 메일로 알려오는 것처럼, 메일링 서비스로 가입된 민원인은 자기가 찾은 기록물과 관련된 다른 기록물을 추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설문지 유형에는 관심분야에 대한 체크를 하는 항목이 빠져있어 조금 아쉬웠다. 설문지를 작성하는 사람이 관심분야를 체크하고, 그 부분에 공개재분류를 통해 공개되었거나 이관되어 서울기록원에서 열람이 가능해진 기록이 생겼을때 그 사실을 이용자에게 알리게 된다면 서울기록원의 재방문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공익적 목적으로 제가 공부도 할 겸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