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하키를 보러 강릉에 가면서, 이번에는 꼭 함성지르지 말고 얌전하게 경기에 집중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보니 나도 모르게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결국 목이 쉬고야 말았다. 게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떤 경기를 보던 항상 그렇게 다짐을 한다는 것을 떠올렸고, 매번 그것을 어긴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냥 어쩔 수 없이, 맘을 비우고 받아들여야 겠다고 생각했다.
캐나다전이 열린, 강릉하키센터
게임을 보면서 아이스하키는 참 이변이 나오지 않는 게임이라는 생각을 했다. 스포츠 직관을 가장 많이 해본 야구와 비교하면 정말 이변이 나올 요소가 별로 없다는걸 느꼈다. 야구는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이변이 많이 나오는 종목이다. 아무리 잘하는 팀도 승률이 7할을 잘 넘지 않는다. 아무리 못하는 팀도 3할은 이긴다.
이변이 잘 나오지 않는 첫째 요소는 공격기회가 균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구는 아무리 약한 팀도 27번의 공격기회를 부여받는다. 팀 전력에 따라 득점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지만 일단 공격기회는 동등하게 받는다. 반면 아이스하키는 약팀은 공격기회를 만들기조차 쉽지 않다. 잘하는 팀은 계속해서 퍽의 소유권을 가지고 많은 공격기회를 만들어내지만 못하는 팀은 공격기회 자체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둘째 요소는 한번에 다득점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야구는 아무리 훌륭한 투수라도 마지막 공 한개에 역전만루홈런을 맞아 역전패하는 것이 가능하다. 공 하나에 4점까지 낼 수 있다. 반면 아이스하키는 무조건 1점이다. 5대0으로 지고 있을때 그 게임을 뒤집는 방법은 5번 골을 넣는 방법뿐이다.
페이스오프 : 상대편의 반칙으로 플레이가 중단된 상태에서도 우리에게 공격권이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축구와 비슷하다. 축구도 공격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고, 한번에 다득점이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약팀이 강팀을 잡는 이변이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축구와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건 플레이가 중단된 이후의 상황이다. 축구에서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득점을 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세트피스상황을 이용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반칙을 유도하여 정지된 상황에서 공격권을 얻어 득점찬스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스하키는 상대편의 반칙으로 플레이가 끊긴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공격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농구에서 점프볼같은 페이스오프라는 것을 해서 공격권을 뺏어와야 한다. 애초에 전력이 약한 팀이 페이스오프상황에서 공을 따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게임 자체는 아주 박진감 넘쳤지만 게임을 보고 있으니 이 아이스하키라는 종목은 약팀이 강팀 상대로 1골 넣는 것도 정말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49번의 유효슈팅, 4실점.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지랴?
한국은 어제 올림픽 8회 챔피언이자 아이스하키의 종주국인 캐나다팀에 49회의 유효슈팅을 맞고도 단 4점만 내줬다. 누구도 한국팀에게 돌을 던질 수 없을 것이다. 귀화선수가 있었지만, 하얀색에 'KOREA' 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은 그들은 모두가 한국의 국가대표팀이었다. 게임이 끝나고 헬멧을 벗기전에는 누가 외국인인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그중 대다수는 캐나다 출신임에도 말이다. 그만큼 그들은 치열하게 싸웠고, 그들은 한국의 국가대표팀으로 존중받을 이유를 스스로 증명했다.
요새 졌잘싸 를 남발하는 경우가 있어서 쓰고싶지 않은데 이럴경우에 졌잘싸를 반드시 써야된다고 생각한다.
졌지만 잘 싸웠다. 한국의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