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구덕야구장이 철거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산에서 떠나올때 구덕야구장을 한번 가볼걸 그랬다. 철거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구덕야구장에서의 단상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부산에서 태어나면 야구를 안접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야구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우연히 지역에 유명한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그 학교에는 야구부가 있었다. 학교에 입학하면 신입생들을 주루룩 모아놓고 빠따를 쳤다. 야구응원을 가르쳤다. 거의 일주일을 연습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대통령배 지역예선에서 지역라이벌인 부산고와의 경기에 동원되었다. 그 경기는 졌었다. 다음날 학교로 가니 선생님께서 이대호, 송승준 나가고 나니까 전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해 7월이었다.
전력이 약하다는 우리학교는 부산에서 했던 전국대회인 화랑기에서 결승진출을 했고 봄에 만났던 그 부산고와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었다. 게임은 부산고쪽으로 기울고 7월의 더위속에 지쳐가던 우리에게 9회말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1년 선배였던 박정준이 동점홈런을 친 것이다. 게임은 연장으로 흐르고 지루한 0의 행진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부산고에서 먼저 점수를 낸걸로 기억한다. 그 다음 이닝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부산고가 이긴거였다.
그 다음 이닝에 극적으로 스퀴즈 작전이 나왔고 그 한 점으로 우리학교는 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이닝으로 넘어가나 했는데 갑자기 경기가 중단되었다. 2시부터 시작했던 게임은 해가 늬엇늬엇 넘어가고 있었던 7시까지 계속되었고 이후 게임을 계속하려면 야간조명을 켜야 하는데 대회주관사에 야간조명을 켤 예산이 없었다. 결국 화랑기 최초로 결승전 당일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다음날 2차전을 치뤄야 했다.
다음날은 우리학교가 이겼다.
그리고 그날이후 나는 지독한 야구광이 되었다.
파란 교복, 파란 하늘, 찌는 듯한 더위, 석수 물병, 잔디가 안깔려져 학교운동장 같았던 구덕야구장, 그리고 박정준.
조금씩 희미해지는 기억의 조각속에서 그런 것들이 아직도 머리속에 남아있다.
그때 나의 히어로였던 박정준은 2003년에 롯데에 1차지명을 받았다. 2010년 고원준과의 2:1 트레이드로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하였고 2013년 송신영과의 3:2 트레이드로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 롯데 기업에 대한 개인적인 실망으로 야구를 보지 않고 있었던 나는 2013년 10월 5일 SK 와이번스와의 그 시즌 마지막 마산경기를 보러갔고 박정준의 인생게임을 다시 감상했다.
이듬해 나는 박정준의 유니폼을 샀다. 그리고 NC 다이노스를 응원하게 되었다.
지금 박정준은 은퇴했고, 가장 좋아했던 프로선수인 이대호가 롯데로 돌아왔다. 그러나 롯데로 돌아갈 순 없다고 생각한다. 바른정당으로 갔다가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는 정치인과 같은 격이 될수는 없다. 그리고 아직 롯데 기업에 대한 안좋은 기억은 계속 남아있다. 야구로 세탁한다고 그 기억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아마 롯데 자이언츠가 롯데라는 이름을 내리지 않는한 다시 롯데를 응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야구 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