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길어져봤자 좋은거 없겠죠.
짧게 읽고 끝내겠습니다.
저는 석란시향 예술감독 및 총지휘를 맡고 있는 강건우입니다.
단원들의 항의라는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여,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들은 왜 나에게 불신을 보내고 있으며, 난 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나의 허물이 아닐까?
그리고 저는 드디어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늘부터 저 강건우는 지휘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삼고,
여러분에게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진심어린,
진심어린 사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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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겠습니다.
왜냐?
이건 진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몰려서 억지로 쓴 것 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요구조건 세가지,
이것도 수용못합니다.
보충연습 금지요?
보충연습을 왜 안합니까? 실력이 떨어지면 해야지.
보충하면 시간외 수당나와, 실력늘어, 공연잘해, 경력늘어, 일거사득씩이나 되는걸 안하고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죠?
단원들의 인격, 이건 저번에 얘기 끝났고.
세번째, 이제까지의 모든 블라블라 어쨌든 사과.
한가지만 물어봅시다. 내가 여러분들을 실력 외적인 것으로 부당하게 야단친 적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준비를 잘 못해와서 여러분들을 헤매게 만든 적이 있습니까?
없지요, 그건 도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말투요? 그럼 이건 요약하면 이소리네요.
선생님 말투 좀 고쳐주세요.
근데, 죄송합니다만, 전 말투도 못 고치겠습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저는 엄마 아빠 말 배울때부터 이 말투였습니다.
그래서 제 가족들도 모두 절 싫어합니다.
근데 어쩌겠습니까? 천성이 이런걸.
대신 몇가지는 여러분께 약속합니다.
시간외 수당 및 각종 연주, 공연수당 제날짜에 철저히 지급될 겁니다.
시향은 시의 소유물이니까 애국가 연주정도는 그냥해라.
그런 거 없습니다. 음표하나 삐소리 하나까지도 다 여러분에게 보수로 지급될 겁니다.
정해진 일련의 스케줄 외에 갑자기 생겨나는 관제 행사?
연주 안합니다.
시장 아들, 딸, 조카가 사위가, 연주하는데 협연해라?
그런거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케쥴 정해진 대로 뚜벅뚜벅 앞만 향해 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들을 창피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연주할 음악앞에, 작곡가앞에, 관객앞에, 여러분들이 당당히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음악을 들은, 한사람 한사람이 이 힘든 세상에 작은 위로라도 받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게 제 이 시향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이자 꿈입니다.
여러분들, 그 꿈을 같이 꿨으면, 좋겠습니다.
마에스트로 강, 기대하겠습니다. 당신의 음악.
Symphony No. 9 in D minor ("Choral"), Op. 125: 4. Presto. - Wilhelm Furtwängler, Ludwig van Beetho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