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모 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2016년의 일이다. 회사가 베트남 등지로 이전에 가까운 확장을 하고 있었는데, 베트남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는 직원이 별로 없었다. 만약에 내가 지원해서 베트남으로 부임을 했었다면 어쩌면 그 회사에서 정년까지 다닐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그 회사에서 마치 뜨거운 솥 안에서 안주하며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극히 나르시시즘이 강했던 아버지를 둔 탓에 지금 생각해보면 나 또한 나르시시즘이 매우 강했었던 것 같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그 나르시시즘은 극에 달했던 것 같은데, 역설적으로 가장 운동을 열심히 할때라 외모 상으로는 역대 최고 수준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도 그때 사진을 보면 감탄이 나오고 한다.
어쨌든 그러다가 기독교를 믿게되면서 그 지독한 나르시시즘에서 극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르시시즘이 강렬한 사람을 만나면 말 몇마디만 섞어봐도 대충 감이 온다. 왜냐하면 말과 행동에서 묘하게 엇갈리는 그 위화감은 결코 감춰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쎄함은 과학이다.) 그때 나르시시즘을 극복할 수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면 불꺼진 교회당에서 혼자 기도하며 아무 가면도 쓰고 있지 않은 나를 직면하면서 실은 나도 좋은 면이 있고 안 좋은 면이 있음을 깨달았고 그러면서 그 가면 너머의 진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부산 호산나교회에 다니고 있을 때 였는데, 금요일 저녁에 하단 예배당에서 하는 찬양집회를 많이 참석했다. 내가 살았던 강서구 신호동에서 사하구 하단동까지 차로 한 30분 정도의 거리였다. 그렇게 기도하고 돌아오면서 그 어두컴컴한 2번 국도 속에서 나를 다시 생각해보는 그런 시간들을 어느 순간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창원에서 야구를 보고 돌아오는 길도 2번 국도를 통해서 돌아왔는데 그 어두컴컴한 도로 위에서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조금 더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고 그때가 33살이 다 되어가던 어느 가을이었다. 부산대에서도 기록전공이 있었고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을 다닐 수도 있었다. 그런데 수원에서 어머니가 아시는 지인 아주머니 한 분과 치킨장사를 하셨다. (부모님은 이혼하셔서 아버지는 울산에 따로 계신다.) 그래서 수원에서 어머니 일을 도우며 대학원을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에 있는 명지대 기록전공대학원을 다니며 치킨배달일을 했다. 그때 나는 인생의 역동성을 깨달았던 듯 싶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치킨배달은 커녕 인생에서 오토바이를 타볼 일이 있을까 생각을 했었던 시절이였기 때문이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날은 치킨이 유독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날이었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왜 이리 미끄러운지 어느 날은 몇 번이고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를 맞으면서 배달일을 했다. 오토바이 헬멧에는 비를 막아주는 바이저가 달려있었는데 그걸 쓰고 있으면 입김이 올라와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비가 옴에도 거의 바이저를 올리고 운전을 했고 비로 인해 온 몸이 흠뻑 젖었다.
재능을 영어로 하면 gift라고 하기도 한다.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이지.
브라질에서는 왜 그렇게 뛰어난 축구선수가 '많이' 나올까. 어느 나라든 오타니 쇼헤이나 김연아 같은 한 두 명의 돌연변이 같은 아웃라이너가 나오긴 한다. 분명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만약 우리나라의 어떤 독지가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서 세계 최고의 코치진과 시설을 만들어놓고 협회와 정부에서도 천문학적인 지원을 한다면 우리도 브라질만큼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셀 수 없이 나올 수 있을까?
글쎄 알 수는 없지만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확률도 그 못지 않게 많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예전에 축구굴기란 것을 한 적이 있었다. 돈을 엄청 쏟아붓기는 했는데 어느 나라의 어떤 대책들 처럼 무늬만 축구굴기 프로젝트 예산으로 붙여져서 쓰인 것이 많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실패했다. 축구에만 한정을 한다면 브라질은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근데 세상에는 축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야구도 있고 농구도 있고 롤도 있고 NC다이노스도 있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에는 왜 그렇게 훌륭한 양궁 궁사가 많이 나왔을까? 왜 그렇게 훌륭한 쇼트트랙 스케이터가 많이 나왔을까? 시설이 훌륭해서? 협회와 국가의 지원이 좋아서? 코치진의 수준이 최고여서? 선수들의 노력이 엄청나서? 그런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gift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신이 나에게 주신 그 gift를 찾아나가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 2번 국도의 반대편에서, 한 여름에 축 처진 불알이 되어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