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평
시즌이 끝났다. 야구팬에게 1년중 가장 슬픈날은 바로 야구가 끝나는 날이다. 지난 주 토요일은 슬픈날이었다. 그러나 슬픔과는 별개로 시즌이 끝났으니 시즌을 돌아보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시즌 중에는 선수들에게 비난이나 비판을 조금 자제할 필요가 있지 않나하고 생각한다. 선수들도 사람인데 인터넷 여론을 보지 않을리가 없고 결국은 그 여론이 선수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엔씨는 젊은 팀이다. 당연히 인터넷 접근성이 높고 베테랑보다 멘탈문제에 있어서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일희일비하는 인터넷 여론은 선수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확률이 매우 높다.
시즌을 돌아보면 의외로 선전했던 전반기, 과부하로 불펜진이 완전히 녹아버려 역대급 막장 게임이 속출했던 후반기로 정리가 될듯하다. 시즌전 전망에서도 밝혔듯 엔씨 전력은 3위권으로 봤다. 그런데 전반기 종료 시점에 2위를 달성했다. 그 과정에서 기아와 공동 1위를 했던 시점도 있었다. 그러나 이때도 불펜이 공을 많이 던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후반기에 완전히 녹아내렸다. 10점 이상 실점을 6게임 연속 기록하여 또 하나의 불명예기록을 작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기 쌓아놓은 승수를 바탕으로 4년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가을좀비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시즌 막판의 경기력은 실망스러웠지만 포스트시즌에서의 경기력은 역시 엔씨는 강팀이라는 확신이 들게 하는 경기였다. 특히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가 백미였다. 엔씨다운 야구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항상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실점을 최소화하고 득점 찬스에서 군더더기없이 득점하여 안정적으로 승리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딱 그 말에 맞는 탄탄한 경기력을 보였다. 그러나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는 다시 시즌 막판의 멜트다운이 발생했다. 두산과의 2~4차전은 3게임 연속 10점 이상 실점하면서 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전력투구를 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은 것일수도 있다. 한구한구 최선을 다해 공을 던졌던 선수의 모습에 큰 박수를 보낸다.
올 한해도 너무 수고 많았습니다!
2. 올해의 게임
직관한 게임 중에 올해의 게임이라 뽑을 수 있는 게임은 단연 10월 8일에 있었던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게임이었다. 2:1로 승기를 잡았던 게임이 박헌도의 홈런으로 2:2 동점이 되면서 롯데쪽으로 흐름이 넘어갔다. 그 게임을 연장 11회초에서 무려 7점을 더 내며 우리의 승리로 가져왔다. 가득찬 사직구장, 3루 응원석을 가득 메운 엔씨팬, 게임이 넘어가자 고요해진 관중석, 그리고 투척된 소주병. 당연히 올해의 직관게임이라 뽑을만 하다.
집관한 게임 중에 올해의 게임이라 뽑을 수 있는 게임은 8월 10일 마산야구장에서 펼쳐진 롯데와의 정규시즌 게임이었다. 당시 롯데는 5연승중이었고 엔씨는 두산과의 맞대결에서 져서 막 3위로 내려온 상황이었다. 당연히 롯데의 기세가 무서웠고 경기전의 전적도 6승 6패로 호각세를 이루었다. 9회말까지 1-2로 지고 있었던 상황에서 롯데는 롯데역사상 최고의 마무리인 손승락이 올라왔지만 극적인 스크럭스의 홈런이 터지면서 엔씨가 3-2로 역전했다. 올시즌 144게임 중 단연 백미라고 칭할만한 최고의 게임이었다.
3. 키플레이어 체크
시즌전 전망에서 주목해야할 키플레이어를 선정했다. 그 선수들이 올시즌 어떤 활약을 했는지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야수부문 - 스크럭스(Excellent), 나성범(Excellent), 김성욱(So So), 권희동(Good)
나성범과 스크럭스는 훌륭했다. 나성범은 30홈런에 100타점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수는 올해도 한층 더 성장하며 훌륭한 경기력을 보였다. 큰 경기에 약하다고 하지만 그건 성장하는 타자에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2002년 전의 이승엽도, 2015년 전의 김현수도, 모두 큰 경기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선수다. 그 선수들이 지금 어떤 평가를 받는가를 돌아보면 나성범도 충분히 더 나아지고 있다고 본다. 제일 인상깊은 장면은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나성범의 솔로홈런이었다. 엔씨의 젊은 야수들이 게임이 어느정도 기울고 상대투수 공이 좋으면 게임을 놔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나성범의 그 홈런은 엔씨의 젊은 야수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게임이 넘어가도 그래도 나는 내 할일 하겠다 식의 그 홈런은 나에게 있어 많은 울림을 주었다.
스크럭스는 테임즈의 2014년 성적정도만 기록해도 성공적이라고 봤는데 그 정도 성적은 충분했고 오히려 클러치 상황에서는 테임즈보다 더 낫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 정도로 큰 활약을 보였다. 김성욱은 개인적으로 5툴플레이어가 될 확률이 높은 선수라고 봤다. 20개 홈런을 칠수 있는 타격, 20개 도루를 할 수 있는 주루, 넓은 수비범위와 어정쩡하게 주루하면 여지없이 아웃시켜버리는 강한 어깨 등등. 그러나 올시즌만 놓고보면 타격에서는 좀 더 많은 고민이 있었던 해였다. 권희동은 응원가의 전 주인공처럼 조금씩 레전드를 향해 가고 있는 첫해로서 큰 활약을 보였다. 특히 큰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가을좀비로서 엔씨가 성장할 수 있는 자원이 될 것이라 예상된다.
투수부문 - 제프 맨쉽(역적!), 이재학(So So), 이민호(Excellent), 최금강(So So)
올시즌 최고의 역적은 외국인 투수 제프 맨쉽이다. 올해 연봉만 180만달러, 한화로 20억 정도 된다. 거기다가 외국인 특성상 통역 추가, 사택 추가, 원정시 가족과 머물수 있는 숙소 제공 등등 최소 22억 이상의 투자를 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투수가 거둔 성적이 112.2이닝을 던져서 12승 4패 ERA 3.67을 기록했다. 후반기 멜트다운의 가장 큰 원흉이다.
12승이라는 성적도 얼핏 보면 호성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 선수가 던진 이닝을 봐야 한다. 게임 패턴을 보면 5이닝 정도 막고 내려가면 올라온 불펜투수가 나머지 이닝을 무실점 혹은 1실점 정도로 막은 케이스가 많았다. 즉 12승의 기록은 불펜투수가 큰 활약을 펼쳤기에 가능한 승수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21번 선발출장하여 112이닝 밖에 못 먹었다. 경기당 5.3이닝 정도만 먹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만큼 나머지 3.7이닝을 불펜이 부담해야 했다.
만약 맨쉽이 경기당 6.3이닝만 먹었더라면 단순 계산으로 불펜진이 21이닝을 부담을 덜했는데 그렇게 될 경우 불펜에서 가장 많은 공을 던진 김진성의 이닝수가 84이닝으로 줄어든다. 만약 평균 7.3이닝을 던졌다면 42이닝의 부담이 불펜에서 빠지게 되고 김진성의 이닝수도 79이닝으로 줄어든다. 맨쉽이 21게임 나왔으니 7.3이닝을 던졌다고 치면 153.3이닝을 던졌다고 볼 수 있는데 그정도만 던졌어도 올해 하반기의 막장 경기력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히 엔씨는 3점대 방어율에 100이닝 던지는 투수보다 4점대 방어율에 170이닝 던지는 외국인투수가 훨씬 큰 도움이 되는 팀이다.
이재학은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5선발급 유망주에게 기대하는 성적을 올렸으나 이재학은 그것보다 더 잘해주어야 할 선수다. 전에 투피치 투수의 한계등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걸 극복하려는 의지가 오히려 문제를 키운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그 최고의 구질인 체인지업과 존 구석구석을 날카롭게 찌르는 제구력을 극대화시킨다면 더 좋은 투수가 되지 않을까. 한국의 그렉 매덕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최근 들어서 하게됐다.
이민호는 불펜투수로서의 자기입지를 극대화시켰다.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전력투구하는 이민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올시즌 이민호는 누구보다도 치열히 야구를 했고 그 결과에 큰 박수를 보낸다. 최금강은 올해 선발투수로 한축을 맡아서 꾸준히 로테이션을 소화해주길 기대했는데 생각보다는 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내년에 더 나은 성적을 거두길 기대한다.
4. M.I.P.(Most Impressive Players) - 불펜 5대장 (김진성, 원종현, 이민호, 임창민, 임정호)
올시즌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선수는 불펜 5대장인 김진성, 원종현, 이민호, 임창민, 임정호다. 원종현 80이닝, 김진성 89이닝, 임창민 66이닝, 임정호 30.1이닝, 이민호 88.2이닝을 던져서 총 353.3이닝을 던졌는데 144게임 기준 전체 이닝중 27.3%를 막았다. 5명 평균 ERA는 4.04이다. 게임 후반 접전 상황에 등판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시즌 매우 인상적인 활약을 했다고 봐야 한다. 특히 김진성은 2009년 임태훈 이후 불펜투수로 8년만에 10승을 기록했다. 대단한 활약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혹사 논란이 다소 일었다. 전반기에만 해도 무서운 속도로 불펜이닝이 늘어났기에 매우 걱정스러웠지만 후반기들어 이민호가 구원진에 본격 등장하면서 귀신같이 90이닝 밑으로 끊었고 3연투도 없었다. 물론 89, 88.2이닝도 적은 이닝이 아니므로 걱정스럽긴 하다. 그러나 빼도박도 못한 혹사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수치이므로 잘 관리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모습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5. H.O.N.(Hope of NC) - 장현식
올해 엔씨의 희망은 장현식이었다. 22번 선발등판하여 9승 9패, 134.1이닝을 던졌으며 ERA는 5.29를 기록했다. 오랜만에 나온 정통파 파워피쳐로서 직구 구위 하나로 상대를 셧아웃시킬 수 있는 파워와 체력을 가졌다. 8월 13일 잠실야구장 두산전에서 8.1이닝 무자책 2실점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준플레이오프 2차전 롯데와의 게임에서 7이닝 무자책 1실점 호투하며 빅게임 피쳐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이 선수를 보고 있으면 프로통산 100완투를 기록한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 선수가 생각난다. 윤학길 선수같은 한국야구의 레전드가 되기를 응원한다.
6. 올해의 사진 - 슈퍼캐치, 그 남자의 팔
출처 : nc_woo님 인스타그램
10월 17일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졌던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 2대4로 두산에게 리드를 빼앗기고 2사 1, 3루 상황에서 추가 실점의 위기였다. 투수는 장현식에서 맨쉽으로 교체가 되었고 맨쉽이 던진 2구가 가운데 몰리자 민병헌은 그 속구를 놓치지 않고 타격했다. 공은 좌중간 완전히 가르는 코스로 워닝트랙까지 날아갔는데 그 공을 따라가던 김준완이 뒤로 달려가면서 다이빙 캐치로 잡아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찍은 사진이다. 그 슈퍼캐치로 엔씨는 플레이오프 1차전을 승리했다.
7. 올해의 뜨거운 안녕 - 이호준
이호준에 대한 기억은 숱하게 많지만... 팀보다 위대한 선수가 있다면 아마 이호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건 2015년 전반기의 크레이지한 활약과 작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의 극적인 안타였다. 작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 표를 구하지 못해서 3루석에 앉았다. 역시나 LG팬이 많이 와있었는데 그들의 대화가 아주 귀에 잘 들렸다.
"NC가 언제부터 야구했다고ㅋㅋㅋ 깝치는거보면 웃겨"
그렇게 그냥저냥 게임이 흘러가고 게임이 넘어가는가 싶었는데 9회말 2:0을 3:2로 뒤집으면서 게임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극적인 순간에 동점타를 만들어낸 이호준의 안타가 있었다. 이호준은 우리한테 그런 존재였다. 지고 있어도 핍박받아도 그런거 비웃듯이 언제든지 한방을 날려줄 수 있는 그런 남자.
"인생은 이호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