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4 추가)
※ 2년전에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오기 전에 잠깐 다니던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고 마침 다른 지역으로 직장문제로 가게 되어서, 그 이후로 마음먹었던 것을 블로그 글로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교회에 저희 어머니가 다니고 계셨고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이후에 비공개로 돌렸습니다. 뭐 여러가지 사정이 있겠지만은요, 어머니도 사람문제로 힘들어하시다가 최근 그 교회에서 탈출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글을 공개로 돌리면서 제가 최근에 생각하는 것을 추가로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부산에 있는 A교회 청년부에서 시작했습니다. A교회는 예전에는 대형교회였으나 지금은 중형교회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교회와 관련된 여러가지 스캔들이 있었어요. 저는 나중에서야 그것을 직면했지만 교회를 떠날 용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거기서 만들어진 여러 인간관계들이 있었으니까요. 나는 그 교회 청년부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평생토록 예수님을 믿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인간관계에서 볼꼴 안볼꼴 다양하게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결정적 사건이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초대형교회인 부산의 B교회로 옮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계기를 만든 분도 나르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 교회로 옮기면서 느꼈던 것은 사람이 많다보니 인간관계에 따른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중형교회 미만의 교회는 이너서클의 힘이 워낙 강고하기 때문에 딸랑딸랑 잘해서 그 인간에게 잘 보이거나 그렇지 않고 잠깐이라도 수틀리면 거짓선동으로 인해 완전히 배척당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고등학교 수준의 인간관계라고나 할까요. 반면 대형교회는 그런 것에서 자유로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상처를 입고 힘들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꼭 있어요. 사람보고 예배드리지 말고 하나님께 집중하자는 말이죠. 솔직히 답변해 드릴까요? 하나님만 보고 예배를 드릴 것이라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는 대형교회가 더 낫습니다.
수원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나서도 권여사가 지역 근처에 있는 500명에서 1,000명이 출석하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거기 안가고 멀리 안산까지 교회를 갔던 이유는 그 경험에서 였습니다. 안산에 있는 초대형교회(이하 C교회)를 다녔는데요, 담임목사님 말씀도 훌륭하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없으니 안 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수원에서 안산까지 가는 것에 대한 현타가 왔습니다. 사실 C교회로 가야겠다고 마음먹기 전에 엄마가 다니는 D교회의 청년부 담당목사님과 한번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꾸 제 마음에 밟히는 것이기도 했죠. 왜 교회를 가보지도 않고 니 마음대로 판단하느냐는 권여사의 강권에 못 이겨서 권여사가 다니는 청년부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니까 저를 인도한 그 담당목사님이 다른 교회로 이직하셨습니다. 그리고 만 1년 6개월. 저는 진짜 말그대로 내가 경험해왔던 그 어떤 교회 공동체보다도 더 최악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공교롭게도 이 4개의 교회 중 D교회가 제일 작은 교회였습니다.
지금은 다른 지역에서 소중한 저의 신앙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며 살고 있습니다.
나에게 대형교회와 중형교회, 그리고 개척교회 중에 어디를 가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그 중에서 최악은 동네에 독자적인 건물을 가지고 있는 500~2,000명 사이에 있는 중형교회이고, 초대형교회나 개척교회 중에서 자기의 상황에 맞게 교회를 선택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청년부 활동이 많은 교회에 나가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고 거기서 온갖 인간관계를 겪으면서 인격이 성숙해나가기도 하고 그러면서 피로해 하기도 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개척교회가 나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이중직 목사가 늘어나고 있어서 성도들의 부담도 거기에 비례해서 작아집니다. (여러가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압니다만 한마디로 해결이 되지 않을까요? "이중직을 하고 싶어서 했겠나?")
어느 교회를 가든 하나님을 위해 예배를 드리는 자가 아니라 가인과 같이 자기자신을 위해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있습니다. 아마 99%의 교회는 그들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에요. 하지만 1%의 교회 가운데에서는 이미지 메이킹과 거짓선동과 같은 정치질에 매우 능숙한 자들이 교회에서도 높은 직분을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일 수도 있구요, 장로나 권사같은 직분자 일 수도 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개척한 교회라면 그나마 확률이 좀 낮다고 봅니다만, 부임목사님이 계신 곳이라면 조금 더 나르경향이 강할 수도 있습니다.
자 그럼 나르시시스트 목회자들은 어떻게 성도들을 교육할까요? 나르시시스트들은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거기에 비교되는 거룩한 자신의 인격을 확인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목회자가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기한테 유리한대로 성경말씀을 곡해해서 성도들을 정죄하고 혹은 성도들끼리 정죄하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죄많은 사람들과 비견되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자기자신을 만들어내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나마 개척교회인 사랑이 제일인 어떤 교회보다 멀쩡한 교회를 교인들끼리 이간질 시키고 파괴시켜서 혼자 거룩함을 누리는 부임목사를 더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초대형교회는 전체 성도가 워낙 많기 때문에 분모가 커서 나르 성향이 강한 자들이 설령 직분자로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 성도들이 가까이서 체감할 확률이 낮습니다. 교회가 크면 클수록 그런 사람들과 엮일 확률은 더 낮아집니다. 아예 성도가 20명도 안되는 개척교회라면 목사님 부터가 자기가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거두겠다는 소명의식이 강할 확률이 높습니다. 열매는 맺지 못하면서 정치질에는 기가 막힌 목사님은 의외로 500~2,000명 사이의 중형교회에 가장 많을 수도 있습니다.
아까 전체 교회 중 나르가 직분자를 차지하고 있는 교회가 1%정도가 될 것이라 말했지만 만약 그것이 나에게 걸린다면 그것은 1%가 아니라 100%의 확률이 됩니다. 처음부터 대형교회나 개척교회에 가서 그런 사람들이 설령 있더라도 나에게 영향을 미칠 확률과 처음부터 어중간한 교회에 가서 그런 사람들과 부대끼며 상처를 입을 확률 중 어느 것이 더 낮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대형교회나 개척교회에 가는 쪽이 상처를 덜 입는다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방법은 한 교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크다고 해서 예배를 안받으시는 것도 아니고 작다고 해서 예배를 더 잘 받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덜한 초대형교회나 개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지금의 저는 출석하는 교회에서 청년부를 졸업할 시기가 오면 좋은 목사님이 개척하고 계시는 개척교회에 가서 저의 신앙생활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2021-08-17 원문)
※ 이 글은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종교개혁을 할 목적으로 적은 글이 아닙니다. 방구석에 쳐박힌 지극히 말랑한 개인이 자기의 경험담을 온라인 공간에 남겨두는 소박한 기록에 가깝습니다.
2년 정도 크지 않은 교회의 청년부에 나가고 있던, 나는 다시 초대형교회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그 교회에서 있었던 만 2년의 기록을 남겨보기로 한다.
1. 내가 가서 예배 외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행사는 제주도 아웃리치였다. 당시 2박 3일정도 이동을 했었는데 그때 이동차량은 2대였다. 1대는 스타렉스 승합차였고 1대는 K3 승용차였다. 목사님 2분은 나와 같이 스타렉스를 타고 이동했고 일부 청년은 K3를 타고 이동했다. 나는 중간중간에 스타렉스 타는 사람과 K3 타는 사람과 바꿔서 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처음부터 K3를 타는 인원은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 활동을 많이 한 청년 4명이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스타렉스를 탄 쪽도 교회활동 오래하고 어느 집사님, 어느 권사님의 자식이었지만 K3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만큼 친목질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1종보통 면허가 있고 자차는 그랜져를 운행하지만 그 기간동안은 스타렉스 승합차와 항상 함께 이동해야 했다. 단순히 K3를 못탔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차를 다양하게 타게 되면 다양한 사람들과 접점이 생기고 친분이 생기는데, 이런 식으로 해버리면 교회내에 패거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2. 그 교회를 가고 나서 소모임 배정을 받았는데, 나랑 동갑내기 남자애가 리더로 있는 소모임에 배정을 받았다. 그런데 그 리더가 나를 좀 아래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치킨배달일을 하느라고 항상 오토바이를 타고 교회를 갔고, 살도 많이 쪄 있었다. 돈을 아낀다고 옷도 사지 않아 옛날에 샀던 낡은 옷을 입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 그 눈빛을 여러 번 느꼈다. 그래서 한두번 소모임에 나가고 이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한 6개월 지나면 소모임이 바뀔줄 알았다. 그런데 소모임 개편을 해도 또 그 리더가 있는 소모임에 배정되었다. 거의 1년간을 예배만 드리고 집에 가는 생활을 했다. 별다른 친구도 없는 수원에서 말이다.
3. 나를 청년부로 이끄셨던 목사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었다. 설교말씀도 정말 좋았다. 하지만 만남도 잠시 그 목사님은 부산에 있는 또다른 교회로 부임하셨다. 다른 목사가 부임했는데, 이 목사도 좋은 목사이긴 했다. 하지만 예배를 끝나고 집에 갈 때, 소모임도 참여하지 않는 나로서는 목사와 간단한 목례정도는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항상 누군가와 딥토크를 나누느라고 다른 사람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서너명 정도의 무리에 둘러쌓여서 무슨 놈의 이야기를 그리 깊게 나누는지... 그 관계를 깨고 싶지도 않아서 항상 바로 집으로 직행했다.
4. 소모임을 안간지 1년이 지나 리더가 바꼈다. 그리고 코로나가 찾아왔다. 교회내 소모임은 금지되어 줌(ZOOM, 온라인 화상시스템)으로 비대면 소모임을 하게 되었다. 줌으로 한두번 참여했었는데, 비대면 소모임이라는게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교회내 소모임은 서로의 감정이 나누어져야 하는데, 줌으로 하면 감정이 잘 나눠지지가 않았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게 되고 내 이야기를 그들이 듣는지 안듣는지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업무적으로 줌을 쓰는 것이라면 몰라도 교회내 소모임에서 줌은 분명히 좋은 수단이 아니었다. 게다가 줌으로 모임을 하면 내 세간살이를 다 공개해야 한다는 게 부담이었다. 이후 종교시설내 소모임 금지 규제가 풀렸지만 계속해서 줌으로 소모임이 이루어졌다. 분명 리더는 그 전 리더보다 한 100배정도 나은 리더였지만 계속해서 줌으로만 소모임을 하니 나는 또다시 교회내 소모임과는 멀어졌다.
5. 직장의 일로 다른 지방으로 가기 전 마지막 예배였다. 오전예배만 드리고 가려는데, 그래도 한동안은 못볼게 분명하니 소모임 리더와 몇 명 친분있는 사람에게 인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바꿔서 오후 청년부 예배를 드렸다. 간단하게 인사하는 자리 정도는 마련해줄 줄 알았다. 나 말고 군대가는 청년이 하나 있었는데, 그 청년은 앞으로 불러내서 인사를 시켰다. 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교회 자주 나온 친구는 아니었지만 군대간다고 인사를 시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나는 뭐 그런 것도 전혀 없었다. 그냥 무시였다. 결국 예배가 끝나고 아는 사람 몇 명하고 간단히 인사를 하고 다른 지방으로 갔다.
6. 엊그제 광복절 대체휴무 연휴가 끼어서 수원집에 갔었고, 오랜만에 D교회를 방문했다. D교회는 청년부 수련회 중이었는데, 문제는 수련회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고, 나 또한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 밖에 없었다. 사실상 나는 집에서 비대면으로 예배드리는 것이나 다를바 없는 상황이었다. 그 모든 일들을 겪고 나니, 계약이 끝나 다시 수원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교회는 오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초대형교회로 간다.